목차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화 뛰어난 지휘자
이 세계에 와서 다양한 기질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마법사들을 만났다.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그들을, 순식간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고민했다.
<거대한 재앙>을 이기기 위해서, 모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협력』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개성』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그들의 영혼의 형태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건 싫다. 모두의 자유를 인정하고 싶다. 제멋대로인 그들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에는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세계는 멸망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개성』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개성』은 나중으로 미루고, 『협력』이라는 것을 입에 쑤셔 넣어 억지로 먹게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편이 그들을 위한 것이니까.
현자
(정말로?)
(목숨보다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인데?)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라스티카의 말은 구원의 빛처럼 반짝여 보였다.
교향곡에서는 여러 악기가 개성을 죽이지 않고 저마다의 소리를 연주한다.
뛰어난 지휘자가 있다면, 서로 다른 소리들도 반짝임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아름다운 선율이 된다.
나는 다섯 권의 현자의 서를 준비해서 라스티카가 추천한 지휘자에 적합한 사람들을 모았다.
중앙 국가에서는 카인.
북쪽 국가에서는 브래들리.
동쪽 국가에서는 파우스트.
남쪽 국가에서는 피가로.
그리고 서쪽 국가에서는 라스티카.
나는 그들에게 속속들이 사정을 설명했다.
현자
지금까지 여러분께는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기묘한 이변에 대응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에 더해, 마법사 노바의 단서를 쫓기 위해 국가별로 행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노바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재앙>을 소환하려고 했던 니콜라스와 관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니콜라스가 행한 의식 같은 것들이 각국의 각지에 남아 있다는 조사 보고서도 올라왔습니다.
마법사 노바는 세계 곳곳에 아군을 만들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카인
누가 노바의 동료인지 모르는 이상, 노바의 수수께끼를 쫓는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방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거군.
현자
맞아요. 니콜라스는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바에게 협력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법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다른 거짓말에 속은 사람들이, 노바의 아군이 됐을지도 몰라요.
라스티카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죠.
<거대한 재앙>은 이 세계에 소환된 적이 없으니까요.
<거대한 재앙>과 이 세계가 맞닿았을 때, 모든 생명은 마법사가 되는 것일지도.
2화 지휘자의 역할
브래들리
시험 삼아 해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지.
<거대한 재앙>이랑 부딪히면 이 세계는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
피가로
금단의 문을 열게 하는 감언이설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지.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신세계에 초대받을 수 있다…….
니콜라스처럼, 그럴 생각은 없었더라도 세계 멸망에 협력해 버린 사람들은 많을지도 모르겠네.
현자님의 말대로, 누가 노바의 아군일지 모른다.
어느 땅에 가든 주의하자.
현자
잘 부탁드립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해 주셨으면 하는 것은, 노바가 강한 마법사라는 것입니다.
미스라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미스라 정도 되는 마법사라도 노바에게는…….
이기지 못했다, 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그의 명예를 위해 고쳐 말했다.
그가 이기지 못했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현자
음, 그러니까, 굉장히 애먹었다고.
오즈와 비견될 만큼 강한지 물어보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브래들리에게 묻고 싶은데요. 브래들리도 노바를 만났었죠?
브래들리
어.
현자
마법관에 있는 모두가 노바와 싸우게 되었을 때에 대해…….
브래들리의 의견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브래들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자신과 피가로를 가리켰다.
브래들리
여기 있는 녀석들 중에서라면 나랑 피가로가 간신히 되겠지.
간신히,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루틸이 붙잡혀서 돌이 되지 않았던 건 농락당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네로는 혼자였으면 죽었을 거다.
파우스트
그렇게나…….
피가로
그렇게나 강한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알고 있을 텐데 말이지.
나이는? 젊어?
브래들리
몰라.
카인
오즈조차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나?
브래들리
………….
피가로
아니 잠깐만, 그 정도는 아니잖아?
브래들리
분명하게 말할 순 없다. 나는 오즈가 진심을 다했을 때를 모르니까.
이런 거 말하게 하지 말라고.
피가로
아아…….
브래들리는 핏대를 세웠고, 피가로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우스트
……네로조차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르는 상대인가.
그렇다면 노바라는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낼 듯한 상황에서는, 단독 행동은 피해야겠군.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을 파우스트가 먼저 말해주었다.
현자
부디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위험이 적도록, 최대한 혼자 떨어지지 마시고…….
서로 보고하거나 의논해서, 다 같이 협력하고 힘을 합쳐 행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금이라도,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인은 고개를 깊이 끄덕이고, 라스티카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카인
알았다.
라스티카
알겠습니다.
현자
감사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안전한 시간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집단행동을 잘하지 못하는 마법사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 지휘자가 되어 각 국가의 마법사들을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라스티카가 알려주었습니다. 악단의 지휘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각각의 악기가 그 악기만의 음색을 울리며, 하나의 곡이 되도록 조화시켜 나가는 것.
여기 계신 여러분이라면, 분명 그것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잃지 않도록, 모두가 자신답게 있을 수 있도록,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그 역할을 짊어질 때가 왔을 때, 잘못하지 않도록…….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지휘하고 정리해 나갔는지, 저에게 보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을 위해, 현자의 서를 준비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3화 저마다의 대답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 부탁은 상당히 어렵고,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리더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이고 제멋대로인 마법사들은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것을 싫어한다. 리더는 가장 힘든 역할일 것이다.
선생님의 역할은, 알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지식을 올바르게 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심리적 부담이 적다.
하지만 리더는, 어디로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디론가 데려가야 한다.
반발을 받거나, 증오를 당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법사와 인간들 사이에 서서 다리를 놓아주는 아서조차 솔선수범해서 리더를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대체 누가 하고 싶어 할까?
모두가 만족하는 규칙 같은 것은 아직 찾아내지도 못한 세계에서…….
온갖 사람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주문을 받는 역할을 앞장서서 떠맡는다니.
멸망해 가는 세계의 지휘관 따위,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세계를 멸망시킬 리더 따위,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맡기고 내 일을 하면서 세계가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불행한 미래가 소중한 사람들을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현자
(하지만, 내 힘만으로는 어려워서 여기 모은 다섯 명에게 의지해 버렸다. ……면목이 없네…….)
내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싫은 역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수한 동료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거니까.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 말에 분명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오래도록 이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바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인
아키라, 너무 격식을 차리는 건 그만해 다오.
네 부탁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힘이 되겠다. 의지해 줘서, 자랑스럽군.
현자
카인…….
거짓 없는 미소를 짓는 카인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받아들여줄지 어떨지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만큼, 쾌활한 대답에 구원받는다.
현자
감사합니다, 카인.
카인
나야말로, 우리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
카인은 앞으로 나아가 내가 준비한 새로운 현자의 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정중히 인사한다.
라스티카와 피가로도 뒤를 이었다.
라스티카
소중한 역할을 맡겨 주셔서 영광입니다, 현자님.
현자님의 대리로서 현자의 서를 맡겠습니다.
현자
감사합니다, 라스티카.
피가로
기꺼이 협력할게. 하지만 너는 이 세계의 글자를 읽을 수 없지?
현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실 때 구두로 보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피가로
좋아. 이야기할 시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
현자
감사합니다, 피가로.
세 사람 모두 웃는 얼굴로 현자의 서를 받아주었다.
그 가운데, 미동도 없이 고뇌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4화 불변의 기도와 가변의 희망
파우스트다.
파우스트
……나는…….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는 짓눌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파우스트
……나는 맡을 수 없다.
순간, 화나게 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파우스트는 당혹스러워하며 곤란해하고 있었다. 미안함마저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파우스트
현자의 부탁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힘이 되고 싶다만…….
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내가 사람들 사이를 조화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무거운 목소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파우스트에게는 친우였던 인물과 결별하고, 처형당할 뻔한 과거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파우스트는 넌지시 암시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하게 해버린 것을, 나는 미안하게 생각했다. 동시에 복잡한 마음이 북받쳐 오른다.
파우스트는 음침한 은둔자에 퉁명스러운 인물이지만, 젊은 마법사들이나 나에게는 친절했다.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우에게 배신당한 사건은, 파우스트에게서 인간관계에 관한 자신감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 같았다.
현자
……저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우스트에게 격려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걸요.
파우스트
나보다 네로가 더 눈치가 기민하다. 그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気がつく
라스티카
네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샤일록과 같은 이유로.
미간의 주름이 깊어지는 파우스트에게 라스티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스티카
그들은 사람의 형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아.
파우스트
나도 누군가의 형태를 바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바꾸고 싶지 않고, 누구에 의해서도 바뀌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과 얽히지 않고 지내왔다.
라스티카
오해하지 말아 줘. 사람이 변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야.
변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새싹도 큰 나무가 될 수 없어. 아기새가 하늘을 날지도 못하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야.
자신을 잃고, 희망을 놓쳐,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된 사람들조차도, 너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는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영웅이 될 수 있어.
이상적인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이, 다음날, 변하기 위한 용기를 품을 수 있게 되지.
불변의 기도도, 가변의 희망도, 둘 다 훌륭한 거야.
라스티카는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져 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선명한 꿈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분명히,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양쪽 모두 필요할 것이다.
변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변하지 않고, 변하고 싶을 때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 해준다.
자신의 타이밍에, 자신의 세계를 바꾸어 갈 수 있다.
이 마법관에는, 그것을 이루어 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5화 갈등 끝에
파우스트
……사람을 영웅으로 바꾸어 놓았다 해도, 그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의미는 없다…….
파우스트는 이마를 짚고 탄식했다. 라스티카는 온화한 미소를 그에게 향했다.
라스티카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어떤 사소한 음색이라도, 악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바람을 흔들어, 이윽고 커다란 폭풍을 일으키듯이.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이윽고 커다란 폭풍을 일으킨다…….
라스티카의 말에 나는 마법사들에게 들었던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득히 먼 옛날, 누군가가 일으킨 행동이 파도처럼 퍼져 나가…….
누군가의 인생에 닿는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간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누군가가 변하지 않았던 것도. 누군가가 변했던 것도.
영웅이 되지 못했던, 보답받지 못했던 지도자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현자
부탁드립니다, 파우스트. 당신의 힘을 빌려 주세요.
파우스트
…………
내가 내민 현자의 서를 바라보며 파우스트는 긴 시간 침묵했다.
지금 나와 그의 사이에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400년의 세월을 넘을 정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부하를 잃었던 그는, 마찬가지로 동쪽의 마법사들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표정에 복잡한 빛깔이 떠오른다.
주저하면서, 그는 눈을 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파우스트
……아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다.
현자
그러면…….
파우스트
하지만, 과대평가하지는 말아 주게. 나는 실패한 남자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겠다만, 나를 의심해 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맡기는 것에 불안은 없다.
하지만 그의 근심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실례다.
나는 파우스트에게 현자의 서를 건넸다.
현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가볍게 목례하고 파우스트는 물러났다.
내 수중에 남은 현자의 서는 이제 한 권뿐이었다.
브래들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브래들리
………….
그의 강렬한 눈빛과 부딪혀 나는 무의식적으로 당황했다.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시선을 방황한다.
아래를 보고 있는 사이에, 브래들리의 기척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의 무언의 박력에 져서,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물어보았다.
현자
……현자의 서를, 받아 주실 수 없을까요?
브래들리
왜?
현자
……불쾌한 얼굴이니까…….
브래들리는 익살스럽게 입을 비틀고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다잡는다.
선혈 같은 격렬한 붉은 눈동자인데도, 마음을 꿰뚫어 보는 냉정한 눈빛에 가슴이 술렁인다.
브래들리
불쾌한 건 아니다만, 재미는 없군.
네놈의 그 태도 말이다.
6화 가치를 부여해
현자
제…….
브래들리
어. 혼자서 바위라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고는.
네놈이 생각해서, 네놈이 우리에게 시키고 싶은 일이 있다는 얘기지.
울상 짓지 말라고.
카인
브래들리. 아키라는 우리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그 책임의 무게에 괴로워하고…….
브래들리
그게 잘못됐단 거다. 우리가 둥지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병아리로라도 보이는 건가?
제대로 이쪽을 봐.
현자
…………읏.
한 손으로 턱을 꽉 잡힌다.
브래들리는 고함을 지르는 것도 꾸짖는 것도 아닌 온화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나에게 전했다.
한때 그를 경모하며 따르던 부하를 지켜보는 듯한 눈빛으로.
브래들리
잘 들어라, 현자. 우리는 마법사다.
너보다 오래 살았고, 너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네가 결정한 일이라고 해도, 거기 따르기로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망친다고 해도 네놈을 탓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풀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불안해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할 리는 없으니까.
미움을 받거나 꾸짖음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약함을 간파당해 마음이 무너져 간다.
그런 나를, 브래들리는 웃어넘기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봐 주었다.
말로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올곧게 나를 마주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독한 북쪽 국가의 대지에서 도적단을 이끌었던 브래들리.
그가 수많은 부하들에게 경모받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브래들리
잘 들어, 아키라. 우리는, 우리의 책임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자신의 마음으로, 네놈을 믿기로 결정하는 거다.
네놈이라면 틀리지 않을 거야. 아무도 그딴 생각 안 한다.
네놈과 함께라면, 망쳐도 좋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여기 있는 거야.
알겠지?
현자
……읏, ……네…….
브래들리
좋아. 그렇다면 벌벌 떨면서 우리 눈치 보는 거 그만해라.
우리를 스스로는 아무 결정도 안 하는 주제에 나중에 불평이나 하는 찌질한 놈들처럼 대하지 마.
우리에겐 긍지가 있다. 비열한 놈들처럼 취급받는 건 모욕적이고 열받는다고.
우리에게 긍지를 줘.
네놈이 우리를 훌륭하게 취급해 준다면, 우리도 큰 활약을 해주지.
훌륭하게 취급하라는 건, 보상을 달라는 게 아니다.
가치가 필요한 거야. 신뢰라는 건 가치다. 네놈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괴롭단 얼굴로 미안하다는 듯 일을 주지 마.
일을 줄 거라면 최고의 보석처럼 줘라. 네놈의 부하들이 가슴을 펼 수 있게 해.
누구라도, 가치 있는 역할을 다하고 싶어 한다.
우두머리가 할 일은, 네놈을 따르는 녀석들에게 가치를 부여해 주는 거야.
알겠냐?
현자
……흑, 네…….
브래들리
좋아, 착하다.
울지 마. 고개 들어, 자.
7화 지휘권의 소재
브래들리는 내 얼굴을 위로 향하게 했다.
거칠게, 젖은 눈꺼풀을 북북 닦는다.
그의 손끝 너머로는, 기분 좋은 그의 미소가 보였다.
브래들리
국가별로 지휘자를 세워서 그 녀석들에게 보고 받고, 거기서 배우겠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잖냐.
문제를 깨닫고 대책을 세웠어. 거기까지 해냈으니까, 자신을 가져라.
현자
……네…….
브래들리
망쳐도, 별거 아냐. 또 다른 수를 찾으면 될 일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몸이 붙어 계시잖냐.
그 외의 녀석들도 일단은.
피가로
그 외라니 무슨 뜻이야?
라스티카
그 외라니 무슨 뜻일까?
브래들리
시끄러운 녀석들이지.
들었냐, 아키라.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나서기 좋아한다니까.
브래들리는 농담조로 나에게 눈짓했다. 나도 모르게 볼이 풀어진다.
그는 안심한 듯 다정하게 내 볼을 톡톡 두드린다.
브래들리
이제 괜찮겠구만. 혼나는 걸 두려워하다간 아무것도 못 하게 돼버린다.
현자니 <거대한 재앙>이니, 휘둘리는 건 딱 질색이지만 슬슬 각오할 시기다.
죽고 싶지 않고, 죽게 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도 있어.
또 절반이나 바뀌면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큰일이고 말이지.
웃어넘기듯 말하고 나서 턱을 당기고, 브래들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브래들리
수를 생각하자고.
현자
……네, 잘 부탁드립니다!
카인
한 가지만 확인해도 될까?
지금까지의 임무에서는 선생님 역을 맡은 오즈가 중앙 국가의 마법사들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내가 지휘관이 된 이상, 지휘권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즉, 주군이신 아서님이나 선생님 역의 오즈를 뛰어넘어서,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도 되는 건가?
확실히 카인의 입장에서는 오즈나 아서에게 지시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카인
특히 오즈가 걱정이군. 나나 아서님은 선생님……. 교관과 지휘관의 차이는 안다.
교관은 육성을 관장하는 역할. 지휘관은 조직을 지휘하는 역할이지. 비슷한 것 같아도 다르다.
예를 들어 파우스트가 어떤 조직의 지휘관이고, 그 교관이 피가로였다고 하자.
평소에는 파우스트가 피가로에게 지도를 받는 쪽이다.
하지만 조직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는 파우스트가 결정을 내리고 피가로는 그에 따를 필요가 있어.
피가로
아, 응……
파우스트
그, 그렇지.
카인
이해하기 어려웠나. 그럼, 예를 들어 브래들리가 우두머리고 그 부하가 네로라고 한다면…….
브래들리
야, 야. 기다려.
카인
그래.
브래들리
왜?
카인
왜냐니?
브래들리
왜 갑자기 네로냐. 방금대로 예시를 들 거면 여기 있는 신랑씨 이름이 나와야지.
카인
라스티카는 그다지 누군가의 부하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라스티카
나는 그다지, 누군가의 부하가 되지는 않을지도?
카인
그래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나는 오즈보다 강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권력을 쥐고 싶은 건 아니지만, 명확히 해두지 않는다면 만일의 경우 트러블이 된다.
라스티카
카인의 경우, 아서님은 주군이시니까.
현자
그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기사단이나 왕궁에서는.
카인
귀빈 경호 임무라고 생각한다면, 경비를 맡은 기사단이나 근위병에게 지휘권이 있다.
피가로
아서는 자신이 경호받는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
카인
그거란 말이지…….
8화 만일의 시뮬레이션
브래들리
그 왕자라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지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카인
물론이다. 하지만 솔선수범해 위험에 몸담는 짓을 하는 건 곤란해.
아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지휘권을 잡는 것을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만…….
오즈나 리케는 승낙해 줄까?
브래들리
중앙의 꼬맹이는 그렇다 치고, 오즈는 남의 밑에 있었던 적이 없을 테니까.
파우스트
그것을 말하자면, 미스라나 오웬도 마찬가지 아닌가? 너, 괜찮은 건가.
브래들리
괜찮을 리가 없잖냐.
교향곡이니 뭐니 전제를 늘어놔봤자 지휘관의 의미는 조직의 우두머리다. 즉, 집단의 정점이지.
나는 북쪽 국가 꼭대기에 선 남자라는 거다.
라스티카
그렇네.
브래들리
그렇네가 아니라고.
내가 북쪽 국가의 꼭대기, 지휘관이라고 자칭해 봐.
미스라랑 오웬이랑 스노우랑 화이트가 달려들어서 날 죽이려 들 거다.
라스티카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피가로는 지당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라스티카
그럴까?
피가로
그렇겠지.
중앙 국가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오즈가 너에게 관대한 건 너를 어린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카인
내가 어린애!?
파우스트
뭐, 그렇지.
브래들리
아직 50살도 안 됐잖냐.
라스티카
클로에와 조금밖에 차이가 안 나니까.
카인
결혼도 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다고?
브래들리
오─ 오─, 폼 잡고 있구만.
라스티카
술도 마실 수 있다고, 래.
파우스트
귀여운걸.
피가로
너 정도 나이 즈음이, 가장 어른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카인
뭐야, 이 분위기!? 나는 평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브래들리
마법사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슬슬 익숙해지라고, 기사 형씨.
피가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오즈는 네게 자신을 따르게 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로 지휘관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거야.
카인
그럴까…….
피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양보하지 않아.
브래들리
양보받아서 될 일이냐. 애송이한테 지시받는 오즈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피가로
나도.
라스티카
서쪽 국가는 걱정 없어. 나를 주인으로 가장한 일종의 역할 놀이가 유행할 것 같지만.
파우스트
동쪽도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피가로
남쪽 국가도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해. 그럼 북쪽과 중앙은 비밀로 하는 건?
브래들리, 카인
비밀?
피가로
지휘관이라는 건 가슴에 묻어두고, 이렇게 그림자 속에서 조종하는 느낌으로…….
브래들리
나왔다. 피가로 특기…….
피가로
남들 듣기 안 좋게.
브래들리
북쪽이랑 중앙만 비밀로 해봤자 어딘가에서 샐 거 아냐. 특히 남쪽 형제쯤에서.
라스티카
미스라씨! 남쪽의 지휘관은 피가로 선생님이에요. 북쪽의 지휘관은 누가 되셨나요?
파우스트
하? 지휘관이 뭐예요. 나는 못 들었는데요.
……이렇게 될 것 같군.
라스티카
될 것 같네.
피가로
알기 쉬운 연극 고마워.
브래들리
오싹하구만. 북쪽 국가에서 누가 꼭대기인가 하는 문제는 생사에 관련된 문제니까.
명예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누가 누구 위고 누가 아래인가 하는 서열에 북쪽은 민감하거든.
언젠가는 녀석들과 결판을 내주겠지만, <거대한 재앙>과의 전투 전에 실랑이를 해봤자 소용없지.
카인
나도 오즈가 반대한다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을 테고…….
파우스트
우선은, 반발을 받지 않도록 가명을 붙이는 건?
*隠し名
9화 다섯 명의 일지 담당
현자
가명이요?
파우스트
아군끼리 대화할 때도 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때를 위해 비밀리에 붙이는 이름이다.
예를 들어 밀정이라 부르지 않고 바구니 상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소극적인 의견이기는 하다만, 지휘관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라스티카
그러면, 일지 담당은 어떨까? 모처럼 현자님께서 우리들을 위한 현자의 서를 주셨으니까.
브래들리
일지 담당이라. 폼은 안 나지만 뭐, 됐다.
통상 임무와는 별개로 노바에게 접근하는 일을 할 때는 내가 뒤에서 조종하면 되는 거지?
*仕切る
현자
그렇습니다. 조종이라기보다, 잘…….
브래들리
악단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듯이,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을 조율하라는 거잖아.
좋아, 해주지.
카인
나도 전력을 다하겠다만, 오즈가 저항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곤혹스러워하는 카인의 어깨를 피가로가 껴안았다. 슬쩍 귓가에 속삭인다.
피가로
아서를 위해서니까, 말을 들으라고 하면 돼.
아서에게는 오즈를 위해서라고 하고.
카인
과연……?
브래들리
오. 또 뭔가 뒤에서 손을 쓰고 있구만? 편하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파우스트
불길한 말은 그만둬.
현자, 나는 네로에게는 말하려 한다. 말한다고 해도 아무 일도 없겠지만…….
그에게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아.
현자
알겠습니다.
브래들리
흥……. 동쪽 녀석들은 연계가 꼼꼼하다니까.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같구만.
파우스트
북쪽 국가보다는 말이지.
피가로
이야기는, 이상일까?
현자
네. 제 이야기는요…….
브래들리
기다려, 하나 더.
브래들리가 한 손을 들었다.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라스티카를 바라본다.
브래들리
무르의 연구실에 대해서다.
라스티카
무르의 연구실?
브래들리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서쪽 국가 마법사 무르는 전 세계에 연구실을 숨겨두고 있다고.
<거대한 재앙>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조사하고 있었던 것은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의 연구실에는 <거대한 재앙>이나 상처에 대해 뭔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
라스티카
맞는 말이지만, 지금의 무르가 연구실의 위치를 알고 있을까?
브래들리
그 녀석이 모르더라도 서쪽의 파이프쟁이는 알지도 모르지.
라스티카
물어볼게.
브래들리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각 국가별로 지휘관이 정리해서 움직이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상대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터놓으려 하는, 성실하고 정의감이 강한 카인.
마이페이스에 느긋하지만, 어느 때든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주위에 상냥한 라스티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지도자 경험이 있으며 젊은 마법사에게 친절하고 세심한 파우스트.
박식하고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하며, 목적을 위해서 관대하고 온화한 판단도, 교활하고 냉철한 책략도 취할 수 있는 피가로.
전직 도적단의 우두머리에 죄수이긴 하지만, 대담한 결단력과 사람 보는 눈이 있고, 남을 잘 돌봐주는 브래들리.
현자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소중한 동료들을,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도록.
마법사들이 한순간이라도, 공생할 수 있도록.
10화 쌍둥이로부터 현자에게
그날 밤…….
현자
네, 들어오세요.
스노우
현자여.
화이트
현자여.
현자
스노우, 화이트. 무슨 일이세요?
스노우
그대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고 있었던 것이 완성되었다네.
현자
제 몸을 지키기 위해……?
화이트
그렇다. 지금까지의 임무 중에도 여러 위기가 닥쳐왔다마는.
스노우
노바라 불리는 마법사에게 접근한다면, 그대에게 더욱 위험이 미칠 테지.
화이트
호호호. 사랑스러운 그대는 본인들의 손으로 지켜주고 싶지만…….
스노우
경우에 따라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때를 위하여, 본인들을 대신해서 그대를 지키는 사역마란다.
스노우, 화이트
나와라.
<노스콤니아>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옅은 빛이 부풀어 올라 퐁, 하고 터졌다.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이상한, 고양이 같은 생물이었다.
스노우
사쿠리피큠일세.
*Sacrificium 제물, 희생양
화이트
사랑스러울 테지. 그대 취향의 모습으로 해두었다.
스노우
마음에 들어 해 주면 좋으련만…….
현자
이게…… 사역마……?
스노우
그렇다.
화이트
마음에 드는가?
스노우
그대의 곁에서, 유사시에 그대의 몸을 지켜줄 게다.
사랑스러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반려묘 같아서 볼이 느슨해졌다.
현자
귀여워……! 감사합니다,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호호호. 기뻐해 주다니 다행이구먼.
화이트
잠시도 떼어놓지 말고 곁에 두도록 하려무나.
현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사쿠리피큠을 받아 품속에 안았다.
고양이처럼 따뜻하지는 않지만 온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아이를 남겨두고 쌍둥이는 떠나간다.
그 아이는 울지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방 안에 사랑스러운 형태의 생명 같은 것이 있는 것만으로 쓸쓸함이 달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자
(사쿠리피큠…… 밥은 안 먹나? 같이 침대에서 자고 그러려나?)
(고양이 같다…… 귀엽네…….)
이름을 붙여 볼까.
들떠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전에, 이 아이는 나의 대신이 될 거라고 했다.
나를 감싸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겁이 나서, 나는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간단히 사라져 버릴 것에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은 무서웠다.
그럼에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몇 번이고 고양이 같은 그 아이를 훔쳐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