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화
보석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의 한때.
식당을 찾은 사쿠쨩과 나를 떠들썩한 목소리가 맞이했다.
클로에
이 초상화가…… 나!
루틸
그건 나야!
히스클리프
그럼 이쪽이 나?
루틸
그건 클로에!
히스클리프
어라?
클로에
그럼 이게 히스?
루틸
아니, 그건 불꽃놀이야.
클로에, 히스클리프
불꽃놀이……!?
현자
세 분 모두, 안녕하세요. 뭔가 즐거워 보이시네요.
클로에
아, 현자님! 루틸이 우리 셋의 그림을 그려줬거든.
히스클리프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어떤 그림이 누구인지 맞히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테이블에 펼쳐진 스케치북에는 즐거워 보이는 컬러링으로, 사람……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들여다본 사쿠쨩이, 우주의 거대한 수수께끼에 직면한 것처럼 갸우뚱, 갸우뚱,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현자
(사쿠쨩은 오늘도 귀엽고, 루틸의 그림은 오늘도 심오하네…….)
히스클리프
그럼…… 음, 정답은, 이게 나고, 이게 클로에. 이게 루틸이고, 이게 불꽃놀이?
루틸
맞아! 불꽃놀이 아래서 춤추고 있는 우리들의 그림이야.
신난다~! 하는 느낌을 내고 싶어서.
히스클리프
아하하, 그렇구나. 신난다는 건 굉장히 전해졌어.
클로에
엄청나게 전해져!
그들의 옆모습에 나도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이 세 사람은 이렇게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서쪽 국가, 동쪽 국가, 남쪽 국가로 태생도 기질도 제각각인 세 사람에게 싹튼 우정.
나는 즐거워 보이는 그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세 사람의 우정이 『현자의 마법사』라는 불가사의하고 힘든 역할의 근사한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클로에
현자님?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무슨 일이야?
현자
아니요. 여러분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현자의 마법사』이기에 가능한 것 같아서, 기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른 국가의 마법사끼리 친구가 될 기회는, 사실 이 세계에는 좀처럼 없다고 들었거든요…….
내 말에 세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을 깜빡거리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클로에
듣고 보니, 확실히?
베넷의 술집이나, 마의 산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가끔, 정도?
루틸
하지만 나, 현자의 마법사로 뽑히지 않았더라면 계속 고향에서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남쪽에서는 그런 곳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히스클리프
나도…….
서쪽이나 남쪽에 갈 기회도 별로 없으니까, 두 사람 다, 알고 지내지 못했을지도 몰라.
클로에
나도 분명 두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여행하고 옷을 만들고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
당연하게 함께 있는데, 현자의 마법사로 선택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었겠지.
중얼거리고, 클로에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새파랗고 밝은 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재앙>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클로에
……달에게 선택받는다는 건, 신기하네…….
쿡 로빈
현자님, 여기 계셨군요.
현자
쿡 로빈씨. 무슨 일 있으셨나요?
쿡 로빈
그게…….
쿡 로빈씨가 눈썹을 내려뜨린다. 곤란한 듯 뺨을 긁적인다.
쿡 로빈
서쪽 변방의 영주가 마법관 방문을 희망하고 잇습니다.
듣자 하니, 자기 마을에서 축제를 열고 싶다며, 그 상담 같은 걸로요.
현자
그렇군요……? 이변의 조사 의뢰는 아니네요.
클로에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쿡 로빈
아니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자의 마법사의 면면도 오즈님이나 전하 같은 유명인 외에는 모르는 것 같았고요.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애시당초 그분의 이야기의 요점을 도통 모르겠어요.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이 분명하지 않아서.
루틸
음……?
히스클리프
하지만, 재앙과 무관한 이야기나 애매한 상담은 마법 관리가 막고 있을 텐데.
타국의 일개 영주의 상담을, 어째서 일부러 마법관에?
쿡 로빈
실은…… 그분이 신경 쓰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축제는 50년 전,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가 약속한 것이다』라고요.
클로에
응?
루틸
약속……? 하지만, 어째서…….
히스클리프
………….
세 사람이 당혹감이나, 혹은 명확한 경계심을 드리우고 얼굴을 마주한다.
나도 긴장에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현자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가 약속을 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무슨 사정으로? 그렇지만, 마법사는…….)
쿡 로빈
마법사는 약속을 어기면 마력을 잃게 되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우선은 현자님의 판단을 여쭙고 싶어서요…….
루틸
……현자님. 전 현자님의 서에는 이 건에 대해 적혀 있었나요?
현자
아니요, 전혀.
예전부터 현자의 마법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까요?
클로에
글쎄……. 샤일록이나 무르는 아무 말도 안 했어.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께서도 특별한 말씀은……
현자
그렇겠죠…….
(……확실한 것을 들은 건 아니지만, 아마 『현자』는 대가 바뀌면 모두의 기억이 애매해져 버려.)
(그런데 그 서쪽의 영주님에게는 50년 전 현자님의 기억이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클로에
거기다,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와의 약속』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어.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 중 누군가』라는 거겠지만…….
그렇다면 마법사 본인이 기억하고 있을 텐데?
애초에 그 마법사는, 어째서 현자님과 함께 약속한 거야?
약속은 보통 자신의 마음으로만 하는 거고…….
히스클리프
……국가적으로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서쪽 왕가는 얼마 전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곳이다.
그게 잠잠해진 지금, 『서쪽의 영주』가 『약속』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까…….
루틸
하지만, 지금은 안 계신 분과의 약속일지도 몰라.
50년 전과 지금은 마법사의 면면도 상당히 달라졌을 테니까.
아니면, 『현자님과 현자님의 마법사, 합계 22명 전원이 약속합니다』 같은, 아주 아─주 커다란 틀의 약속이었다거나?
클로에
엑,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샤일록이나 무르는, 분명히 싫어할 거야.
히스클리프
북쪽의 마법사도 싫어하겠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도 없고…….
현자
(……현자에 관련된 일이니까, 모두 잊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어…….)
세 사람의 의견을 필사적으로 음미하면서, 나는 팔짱을 꼈다.
되도록 차분히, 열심히 생각한 뒤에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현자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마법관으로 데려와 주세요. 가능하면 최대한 서둘러서.
쿡 로빈
아,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로 모셔 오겠습니다.
클로에
현자님, 괜찮아? 성에서 면회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히스클리프
1, 2주 후의 면회로 하고, 그사이에 조사나 준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자
저도 망설였지만, 누군가가 정말로 약속을 잊고 있고, 게다가 기한부였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50년이나 된 약속을 지금 들고 나온다면 시간에 의한 계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같은…….
루틸
시한……? 하지만 확실히, 『축제를 열기로 약속한 날이 오늘』이라거나, 그러면 큰일이죠.
현자
하지만 솔직히, 꽤 불안하기는 합니다.
저희도 최대한 만전의 태세로 임하도록 해요.
히스클리프
만전의 태세?
현자
즉──.
오즈
………….
화이트
아직인가, 아직인가~. 수상한 사람, 아직인가~.
루틸
화이트님, 아직 수상한 사람이라고는…….
화이트
그렇다 해도 말이다.
본인들, 가장 고참이다만 그러한 수수께끼투성이의 약속 따위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구먼.
『만전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협력을 부탁한 것은 오즈와 쌍둥이였다.
가공할 만한 세계 최강의 마법사, 오즈.
수백 년 이상 이 역할을 맡아온 최연장자 노인, 스노우와 화이트.
그들 앞에서 거짓 약속을 들먹이거나 수 싸움 따위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선이다.
현자
(그리고 불쑥 나타난 두 사람…….)
시노
화이트가 있는데 스노우는 없는 건가?
쌍둥이가 함께 있어야 겁먹겠지.
화이트
스노우는 오웬을 징계하고 있는 중이란다.
그 녀석, 카나리아로 둔갑하여, 먹으면 4일 후에 죽는 과자를 다과로 내놓으려 했지 뭐냐.
네로
먹으면 죽는 과자라니.
사실상 독이잖아.
급히 오즈와 화이트를 식당에 불러 모았을 때 우연히 찾아온 이 두 사람도, 이 면회에 동행해 주고 있었다.
시노는 『저녁 먹기 전까지 한가하니까』, 네로는 『구경꾼 본성』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를 걱정해 주고 있는 거겠지.
현자
(네로가 아까부터 만지작대고 있는 커틀러리, 아마도 마도구겠지…… 고맙네…….)
2화
오즈와 화이트 사이에 서서 침을 꼴깍 삼키고 엘리베이터를 바라본다.
현자
(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거야. 와라……!)
쿡 로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은 서쪽 국가에서 오신 루콜라씨입니다.
루콜라
루…… 루콜라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내주셔서 영광입니다.
현자
(……혀 씹었어…….,)
쿡 로빈씨가 데려온 사람은 황갈색 곱슬머리가 덥수룩하게 뻗쳐 있는, 부유해 보이지만 수수한 남성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피가로보다 조금 위일까.
하지만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지, 태도는 훨씬 주눅 들어 있고, 긴장돼 보인다.
『뭔가 죄송합니다, 소란스럽게 해서……』라며 황송해하는 것이 역력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루콜라
저, 뭔가 죄송합니다. 소란스럽게 해서…….
현자
(정말로 말했다…….)
히스클리프
고마워, 쿡 로빈.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안내할게.
쿡 로빈
알겠습니다! 저는 카나리아의 하인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루콜라씨, 돌아가실 때 불러 주세요.
루콜라
앗, 네! 감사합니다.
현자
그럼 저희는 담화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안내해 드릴게요.
화이트
……자. 자리를 잡았으니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본인은 현자의 마법사, 화이트일세.
루콜라
화이트? 북쪽의 쌍둥이?
화이트
호호호, 그렇다.
그리고 본인 옆에 앉은 것이 당대의 현자.
그리고 그 옆이 오즈다.
루콜라
네에!? 우와아……!!
오즈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군요!
저는 커다란 도마뱀이라고 들었는데!
오즈
………….
시노
대단하다. 솔직하게 무례해.
네로
저기, 당신. 진짜 오즈 앞에서…….
루콜라
네? 앗…….
아, 앗, 아앗, 저, 그게, 저기…….
죄, 죄송합, 시골에서 자라서…… 그게…….
클로에
괘, 괜찮아! 죽을 것 같은 얼굴 하지 마!
오즈님은 그런 걸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그, 그렇지, 오즈님?
오즈
아아.
화이트
호호호. 오즈가 대인배라 다행이로구먼, 루콜라!
그렇다는 것으로, 오즈의 자비에 감사하고 우리의 물음에 성실히 답하도록.
그대는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가 축제를 열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지.
이 말에 거짓은 없는가?
루콜라
ㄴ, 네…….
화이트
흠, 금방 긍정하는구먼.
그럼, 누가 그렇게 약속을 한 게지?
루콜라
그, 그건, 여러분이 아니신가요?
현자님과,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
화이트
말이 시원찮구먼.
루콜라여,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은 그대의 약속을 믿기 어렵다 생각한다.
그대가 나눈 약속은 거짓. 서쪽 왕궁의 사람이 이 마법관을 염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루콜라
제가 간자……!?
제, 제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제가 그런 중대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노
생각 안 해. 하지만 그런 연기일지도 모르잖아.
화이트
맞는 말일세. 루콜라여,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증거를 대거라.
루콜라
즈, 증거……. 뭐가 있을까, 어…….
……아, 그래! 이 키홀더는 어떻습니까?
루콜라씨가 작고 낡은 손수건 꾸러미를 꺼냈다.
정중하게 열어 우리에게 내민다.
그 내용물을 한눈에 본 순간, 나는 크게 눈을 떴다.
현자
이 챰……. 유니언잭과 빅벤이다!
이거, 영국의 키홀더잖아!!
루틸
국?
클로에
잭? 누구?
시노
우리 스승이 잭이었는데.
히스클리프
50년 전 이야기라면 아마 관계없을 거야.
현자님, 아는 사람의 물건이었나요?
현자
아니요, 원래 있던 세계의 어떤 나라의 국기와, 그 나라에서 유명한 건물입니다!
중앙의 문장과, 그랑벨 성 같은 거예요!
루틸
네!?
현자
제 고향 나라는 아니지만, 분명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루콜라씨, 혹시 이거…….
루콜라
네! 약속의 표식으로 50년 전 현자님께 받은 다른 세계의 물건이라고 합니다.
현자
역시! 와아……!!
오즈
다른 세계의 물건이라…….
그 두 가지 의장은 상당히 복잡하다.
마법을 사용해도, 현자까지 속일 수 있을 만한 위조품은 만들 수 없다.
네로
그렇겠지.
그렇다는 건, 『약속』 건은 진지하게 들어두는 편이 좋겠네.
클로에
미안해, 루콜라씨.
의심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
루콜라
아뇨,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스스로도 실은 약속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일기에 쓰여 있던 것뿐이라서…….
히스클리프
일기?
루틸
좀 더 자세히, 저희에게 축제를 부탁하러 오신 사정을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루콜라
물론입니다. 그럼…… 우선 동상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실은 저희 마을에는, 현자님 세계의 신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현자
네!?
루콜라
아버지께서 당시의 현자님께 이야기를 듣고 50년 전에 건립하셨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께서는 중앙 국가를 여행하고 계셨는데…….
루콜라씨의 아버지는 마법관 근처의 마을에서 당시의 현자와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거나, 고향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새로운 영주로서의 불안을 들어주거나 했다고 한다.
그때 현자가 가르쳐 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중에 『행복을 부르는 신상』이라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한 아버지는, 경비 중이던 마을 광장에 신상을 재현해 세우기로 했다.
현자
(행복을 부르는……. 마네키네코 같은 걸 떠올리게 되는데, 아니겠지. 키홀더를 보면 외국인 같고.)
어쨌든, 신상은 무사히 건립되었지만 당시의 정치 사정으로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현자의 전언으로서 중앙의 사자로부터 전해진 것이, 그 50년 후의 약속이었다.
루콜라
……라고, 최근에 발견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일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루틸
아, 아버지의 일기를 멋대로 읽어버린 건가요? 괜찮나요?
루콜라
별로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네로
서쪽 녀석들, 저런 면이 있지…….
루콜라
어쨌든, 그런 약속이 있다면, 하고. 딱 50주년인 올해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클로에
그렇구나…….
화이트
자, 그렇다 해도, 우선은 중요한 것부터 확인하자.
일기를 읽은 바로는, 약속의 상대는 50년 전의 현자였다는 게지?
오즈
마법사를 만났다. 말을 나누었다. 라고 아버지의 일기에 쓰여 있었나.
루콜라
아뇨. 현자의 마법사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못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즈
그렇다면 이 약속으로 우리의 마력이 위협받을 일은 없다.
마법사가 힘을 잃는 것은, 마음을 배신했을 때.
현자만이 맺은 계약은…… 자신이 체결하지 않은 계약은, 무관하다.
루틸, 클로에
다행이다……!
화이트
그렇다는 것으로, 루콜라여. 작별이로구먼.
루콜라
네!?
네로
하인실은 1층 식당 근처다.
가보면 알겠지만, 안내가 필요하면…….
루콜라
잠시만요, 저, 돌려보내려고 하지 마세요!
축제는요? 열어주시지 않는 건가요?
시노
안 열어. 그럴 의리는 없어.
루콜라
에에~……!! 거짓말…….
루콜라씨는 풀썩 어깨를 떨어뜨렸다.
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의자에 고꾸라져서, 감정이 풍부한 서쪽 사람다운 솔직함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한다.
루콜라
마을 사람 모두에게도 축제를 엽니다~ 하고 이미 다 알렸는데…….
다들, 저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클로에
그, 그랬구나.
루틸
정말로, 멋진 축제를 열고 싶다는 일념으로 서쪽에서 먼 길을 오셨군요…….
루콜라
아버지의 묘 앞에서도 보고 드렸는데.
흐윽…… 우우우~…….
히스클리프
저, 뭔가, 죄송합니다…….
상냥한 세 사람이 어쩔 줄 몰라하며 눈썹을 내린다.
하지만 화이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화이트
『약속』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 무거운 것.
원망할 거라면, 그것을 경솔하게 사용한 그대의 아버지와 50년 전의 현자를 원망하도록 하려무나.
루콜라
흐으…….
클로에
그, 그래도, 화이트님…….
화이트
이것 보게, 그대들도 그런 얼굴을 하지 말거라.
과도한 몰입은 마음의 족쇄가 된다.
그대들의 동정심은 확실히 미덕이란다.
하지만, 루콜라나 축제에 관한 몰입이 가슴에 너무 강하게 남아 있다면…….
마음이 헤매이고, 흔들려서, 마법을 잘 다루게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클로에
네?
네로
그래도, 뭐……. 몰입하거나 동정하거나 하는 건 그만두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 느낌이라면, 히스와 클로에와 루틸은, 지금 시점에서 조금 위험할지도…….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
3화
시노
어이. 전 세계에서 의뢰가 쏟아져 들어오는 이 시기에, 엄청난 중대사잖아.
루콜라
훌쩍. ……죄송합니다. 축제의 상담이 이렇게…….
루틸
아니요! 루콜라씨 탓이 아니니까요.
클로에
그…… 그래, 신경 쓰지 마!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따라서, 축제를 열어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잖아?
오즈
아아.
클로에
그럼……!
클로에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짝반짝, 조금 긴장하면서 양 옆의 히스와 루틸의 안색을 살핀다.
클로에
저기…… 두 사람 모두. 이 축제, 우리가 맡아보지 않을래?
히스클리프
우리가?
클로에
봐봐, 우리들 『현자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잖아?
그런 때에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에게 축제의 부탁이 온다는 건,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루틸
좋아, 하자, 하자! 재미있을 것 같아!
히스클리프
나도…… 두 사람과 함께라면, 축제, 해보고 싶을지도.
공식적으로 눈에 띄는 일은, 정치적인 것도 있으니까, 어렵지만…….
루콜라
정치?
히스클리프
아…… 음, 소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히스클리프 블랑솃. 동쪽의 마법사입니다.
루콜라
동쪽…… 블랑솃…… 으악!
그건, 이제, 물론, 신중하게 배려하겠습니다!
부디, 거리낌 없이.
클로에
와아……! 두 사람 다, 루콜라씨도, 고마워!
반드시, 꼭, 즐거운 축제로 만들자!
루틸, 히스클리프
응!
현자
저기, 저도 참가하게 해주세요.
지금의 『현자』로서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싶습니다.
클로에
물론이지!
화이트
호호호, 축제는 무척 좋아한단다.
본인과 오즈도 도와주도록 하지.
오즈
나도?
화이트
물론. 그대도, 이대로 아이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겠지.
네로와 시노도 돕도록 하거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시노
그거, 떠맡는 쪽이 말하는 거잖아.
네로
뭐, 하겠지만.
클로에
그럼 여기 있는 모두 다 같이, 축제네!
루콜라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럼, 히스클리프님의 건도 있으니, 여러분께서 축제의 주최자라는 형태는 어떨까요?
당일의 포장마차나 이벤트는, 저희 마을 사람들이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내용의 결정이나 준비 지시를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히스클리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한 번 마을을 방문해서 마을 여러분들과도 상담하고 싶네요.
루틸
확실히!
루콜라씨, 조만간 마을에 찾아봬도 괜찮을까요?
루콜라
물론입니다! 그럼, 일정은…….
……좋아! 그러면 이날, 마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 맡아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실례했습니다!
현자
……하아~. 수상한 사람도, 마력을 잃는 것도 아니라서 다행이다…….
히스클리프
정말로요…….
오즈님, 화이트님, 감사했습니다. 시노랑 네로도.
시노
흐흥.
네로
뭐, 경계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어떻게든 될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나는 밥 준비하러 돌아가야겠다.
화이트
본인도 스노우쨩의 곁으로 가야겠구먼. 오웬쨩, 울고 있으려나~.
클로에
우, 울고 있지 않으면 좋겠네, 개인적으로는…….
마법사들도, 모임이 끝난 고양이처럼 제각기 일어선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기지개를 켠 루틸이 문득 중얼거렸다.
루틸
그런데…… 50년 전의 현자님은 어째서 약속을 하신 걸까요.
현자
네?
루틸
상상해 봤어요. 아키라님은, 예를 들어 쿡 로빈씨와…….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가 축제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실 것 같나요?
현자
그건…… 안 할 것 같아요.
약속의 구조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자신도 없고요.
루틸
그렇죠? 그러니까 이 약속은, 『현자님』치고는 이상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히스클리프
……확실히…….
클로에
……50년 전의 현자님은 뭘 하고 싶었던 걸까?
혼잣말 같은 클로에의 중얼거림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창밖에서 <거대한 재앙>이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머물러 있다.
현자
(……50년 전의 현자님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로부터 며칠 뒤──.
현자
사쿠쨩, 오늘은 루콜라씨의 마을에 가는 거야. 잘해 보자.
사쿠리피큠
………….
현자
왜 아까부터 귀를 젖히고 있는 거야……?
뭐,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나? 안아서, 데려갈까.
사쿠리피큠
………….
현자
어라…… 기분 풀렸어? 그럼 괜찮은 건가?
그래도 일단 이대로 안고 갈게.
사쿠리피큠
………….
현자
(편안해하기 시작했어……. 역시, 귀엽다…….)
안녕하세요.
클로에
안녕, 현자님!
히스클리프
안녕하세요.
이제 시노와 네로가 모이면 출발입니다.
현자
알겠습니…… 어라? 오웬도 계신가요?
오웬
…….
히스클리프
지난번의 독이 든 과자 건을 반성하는 봉사활동이라고 합니다…….
루틸
화이트님 외에, 50년 전을 아는 마법사를 모집했더니 자원하셨대요.
오웬
자원 따위 안 했어. 쌍둥이가…….
화이트
호호호, 불만인가?
반성의 봉사활동이라면, 이라며 이번에는 스노우가 감시를 사양했다.
본인은 물론 스노우가 함께 가는 편이 기쁘다만?
오웬
……쳇…….
혀를 찬 오웬이 쏘아보듯이 클로에와 히스를 보았다.
입술이 공격적으로 웃는다.
오웬
그래서? 뭐였더라.
너희들의 약한 마음이 마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축제였나.
히스클리프
음, 그게…….
오웬
축제는 좋아. 회장 한가운데에 케르베로스를 풀어놓으면 재미있지 않겠어?
클로에
노, 농담이지?
오웬
농담일까.
있지, 많은 사람을 죽인 후에도, 우리는 세계의 영웅…….
루틸
오웬씨. 그 정도로.
보다 못해 감싸오는 루틸에게, 오웬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위협받아도 금방 회복하는 루틸은, 스트레스 해소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짜증스럽게 밀치는 그 순간──.
???
그가아아아아아!!!
오웬
쳇!
클로에
어!? 무서워!? 뭐야!?
루틸
와앗, 미안!
어느 주머니에 넣었더라…… 읏차!
루틸이 뭔가를 꺼내서 자명종 시계처럼 툭! 하고 두드렸다.
순간 끔찍한 소리는 멈췄지만, 히스클리프가 몸을 뒤로 약간 젖히며 조심스럽게 루틸의 손안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히스클리프
루틸, 그거 뭐야……? 악마의 미라?
루틸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부적이래. 미스라씨에게 받았어.
화이트
어쩐지, 아까부터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현자
사쿠쨩이 귀를 젖히고 있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구나…….
사쿠리피큠
………….
오즈
……그것은 온갖 위기와 악의를 위협하고 반격하는 강력한 부적이다.
하지만 그 힘 때문에, 신변에서 쓰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너도 함께 말려들 것이다.
다음에는 던져서 쓰도록.
루틸
알겠습니다!
오웬
그거, 부적으로 괜찮은 건가.
네로
미안, 기다렸지! 전원 무사해?
시노
단말마 같은 게 들렸는데.
히스클리프
네로, 시노.
루틸
괜찮아요! 제 부적이 소란을 피웠습니다.
화이트
이것으로 전원 모였군. 바로 마을로 출발하지.
현자
오즈, 잘 부탁드립니다.
오즈
아아. <복스노크>
루틸, 클로에
도착─!
히스클리프
와아…… 번화한 마을이네.
도착한 골목에서 큰길로 발을 내디딘 순간, 활기찬 마을의 혼잡함에 둘러싸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부산하게 힘찬 걸음을 향하는 마을 사람들.
오가는 웃음소리도, 말소리도, 농담도, 조금 빠른 말투로 수다스럽다.
『흥이 넘칠 것 같은 마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자
저 동상…… 오사카의 그것!?
클로에
사카?
히스클리프
저것이 아마 다른 세계의 신상일 거예요.
현자님도 알고 계시는 신인가요?
현자
아, 아마도요! 제가 있던 나라에서 유명한 신상이 모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 동상은 복의 신이었던가……. 발바닥을 문지르면 좋다고 들은 것 같은…….)
뜻밖의 만남에 혼란스러워서, 당황했다.
예전 세계에는 당연하게 있었던 동상이라도, 이 세계에서 보면 꽤나…… 엄청나게 초현실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50년 전의 얼굴도 모르는 현자님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4화
현자
(어쩌면, 일본을 알고 계시는 현자님? 앗, 근데 그 동상의 뿌리는 일본이 아니라고 퀴즈 프로에서 봤던가.)
(그럼 그쪽 출신이신가? 하지만…….)
루콜라
여러분─ 마중 나왔습니다!
저희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클로에
아, 루콜라씨!
루틸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루콜라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벌써 저희 마을의 『오오키니님』을 보고 계셨군요.
현자
오…… 오오키니? 간사이 사투리!?
루콜라
간?
화이트
……루콜라여. 축제를 상담하기 전에, 이 동상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겠니.
루콜라
물론이죠! 그 후에 아버지의 서재를 조사했더니 장인에게 넘긴 오오키니님의 설계도 사본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오오키니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적혀 있었어요. 가져왔으니 읽어드릴게요.
『이 동상의 지식과 디자인은 다른 세계의 것이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신상에 대해 현자가 가르쳐 준 것이다』…….
의기투합해 이야기해 준 바에 따르면, 『현자』는 한때 『일본』의 어느 상업 도시에서 유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도시는 떠들썩한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끊이지 않고, 모두 함께 『오오키니님』이라는 신상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루콜라
『우리 마을도 부디 그 도시를 본받고 싶다! 그 신상을 우리 광장에도 세우기로 했다』
『라는 것으로, 『오오키니님』 건설, 잘 부탁한다』
……설계도에 적혀 있었던 것은 이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잠금장치가 달린 서랍 속에서 『50년 후 개봉!』이라는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축제 당일에 개봉하라고 가장자리에 적혀 있었기에 아직 열지 않았습니다.
히스클리프
그렇군요…….
클로에
그래서, 어때? 이거 현자님 고향에 있던 거야?
현자
네! 일본…… 제 나라에 있었던 동상이 모델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려다 뜨거운 것이 가슴에 왈칵 차올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오사카에 있던 동상이 모델이었던, 다른 세계의 오오키니님.
원래 세계의…… 일본의 TV나 신문이나 관광 잡지에서 몇 번이고 모델이 된 동상을 보았다.
그것을 바라보며 가족이나 친구와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
무심한 한낮. 그리운 웃음소리.
그 세계에도 확실히 있었던, 나의 소중한 것들.
너무나 멀어진, 사랑스러운 장소.
현자
……죄, 죄송합니다. 저, 그렇습니다, 이거, 제, 고향의…….
루틸
현자님……
클로에
……잘됐다, 현자님. 다행이네…….
현자
ㄴ, 네……!
잘됐다, 기뻐……. 정말로…….
화이트
……호호호, 현자의 세계의 신상이라.
왠지 효험이 있을 법한 기분이 드는구먼.
시노
이 녀석 생긴 거, 그렇게 고향의 동상과 닮았어?
현자
많이 닮았습니다!
대신에 이름이 상당히 다른데, 현자님이 사투리를 가르쳐 주거나 하셨을까요.
루틸
『오오키니』라는 건 사투리인가요?
현자
『오오키니』가 고맙다거나, 감사를 의미하는 사투리입니다.
……정말로, 그립네요…….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번 금빛으로 빛나는 『오오키니님』을 올려다보았다.
기억과는 다른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그리운 다정한 미소에 가슴이 벅차올라 미소 짓는다.
현자
(50년 전의 현자님, 오사카에 살고 계셨구나.
어느 동네에 살고 계셨을까? 나도 아는 곳일까?)
(이 동상을 알렸다는 것은, 그 유명한 전망타워에도 올라갔던 거겠지.
돌아오는 길에 타코야키를 먹거나 하고.)
(쿠시카츠, 고기만두, 오코노미야키……. 아저씨표 치즈케이크…….
아아…… 먹고 쓰러지고 싶다…….)
루틸
후후…… 정말 잘됐네요, 현자님. 저까지 기뻐지고 말았어요.
히스클리프
나도.
클로에
나도! 있지, 모처럼이라면 말야. 축제도 현자님의 고향을 테마로 해보지 않을래?
현자님과 오오키니의 공통된 고향…… 일본의 축제를, 현자의 마법사들이 여는 거야!
루틸
최고다! 찬성!
히스클리프
찬성. 서쪽 사람들은 진귀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니까, 마을 사람들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
시노
정해졌네.
현자
우와……!
루콜라
오오키니님을 기념하는 데 걸맞은 굉장한 축제가 될 것 같네요!
바로, 제 저택에서 회의를 하도록 하죠. 축제 출점 희망자도 이미 모여 있습니다.
다른 세계의 축제에 대해 부디 여쭙고 싶습니다!
현자
네!
클로에
그럼, 현자님의 고향…… 일본의 축제, 다 함께 최고로 만들자!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에이, 에이, 오~!
시노, 네로
오~.
화이트
호호호. 모두 의욕이 넘치는구먼.
오즈
아아.
오웬
지금부터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면, 클로에네 울까.
재미있을 것 같…… 음?
오오키니
………….
세 사람
…………?
화이트
……아니, 기분 탓인가. 그럼 우리도 가보도록 할까.
그 뒤로도 우리는 회의를 위해 루콜라씨의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일본의 축제에 대한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질문에 대답하고, 때로는 『어라? 전해지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히스클리프
오늘부터 본격적인 회장 준비가 시작되겠네요.
클로에
드디어, 라는 느낌. 다들 힘내자!
그러니까, <스이스피시보・보이팅고크>!
시노
오. 이거 클로에가 최근에 만들던 거잖아.
오즈
현자의 세계에서 축제의 주최자가 입는다고 했던가.
네로
『해피』랬나?
현자
어, 『핫피』입니다! 여름 축제나 문화제 같은 데서 한마음으로 단결하기 위해 입는 옷이에요.
화이트
음음, 꽤 귀엽지 않은가!
본인의 반들반들한 무릎도 돋보이고 있다.
오웬
……클로에와 히스클리프와 루틸, 거의 똑같은 옷이잖아.
항상 사람에 맞게 바꾸면서.
클로에
에헤헤, 알아봐 줘서 기뻐! 우리 셋이서, 이번에는 똑같이 맞춘 거야.
그래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루틸
이 초상화 챰이랍니다!
이거, 제가 요전에 그렸던 거예요!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아하하, 이거 내 얼굴이야. 귀여워.
클로에
그치~! 셋이서 힘내자!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오~!
현자
훈훈하네…….
시노
좋은 얼굴 하고 있다.
루콜라
여러분…… 와, 멋진 의상이네요!
클로에
고마워! 마을 사람들은 벌써 준비하고 있어?
루콜라
네, 보시는 대로! 오늘은 여러분께도 도움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꼬맹아. 생선 크기는 이거면 될까.
시노
꼬맹이라고 하지 마.
생선은 그건 너무 작지 않나?
금붕어…… 레모라 같은 거 풀어놓는 거잖아.
오웬
얘기 안 들었어? 꼬맹아.
금붕어는 작은 물고기라고 현자님이 말했잖아.
도망치는 작은 물고기를 쫓아다니는 놀이를 하는 거라면, 생선은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오오! 고맙네, 형씨.
오웬
후후. 너는 꼬맹이고 나는 형씨래.
시노
시끄러워. 애초에 오웬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오즈나 화이트한테나 가.
오웬
싫어. 너를 외톨이로 두면 불쌍하잖아.
너무 좋아하는 히스클리프에게도, 루틸과 클로에에게도 따돌림당하는 시노.
그 누구도 너를 동료로 넣어주려고 하지 않아.
시노
멋대로 얘기하기는. 그 녀석들은 권유했지만 내가 거절한 거야.
자…… 저거 보라고. 저쪽에 있는 히스.
오웬
……? 봤는데, 뭐?
시노
좋지. 저, 클로에와 루틸에게 휩쓸려서, 조금 신나 있는 히스.
저건 여기서 보는 편이 귀여워.
오웬
………….
네 그런 점, 가끔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해.
화이트
우리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마법 도구를 만들 게다.
피날레에 어울리는 것은…… 불꽃놀이!
오즈
꽃비.
화이트
불꽃놀이!!
오즈
꽃비.
네로
저기~…….
화이트
불꽃놀이~~~!!
오즈
꽃비.
네로
저기!
오즈
꽃비.
네로
밀어붙이지 마…… 가 아니라, 저기 두 분, 저를 끼고 옥신각신하지 말아 주시면…….
화이트
그대가 본인의 편을 들지 않으니까 그런 거다!
그대도 마지막은 불꽃놀이로 펑, 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오즈
불꽃놀이는 시끄럽다. 꽃비 쪽이 조용해.
화이트
본인은 네로에게 묻고 있다만!
그대는 본인의 편이겠지? 응? 응??
네로
펴, 편 같은 건 아니지만, 뭐, 확실히, 불꽃놀이 쪽이…….
화이트
역시~!!
오즈
………….
네로
노, 노려보지 마…….
분위기라면 꽃비가 더 취향이지만, 직업상 밥이 신경 쓰여서.
5화
오즈
식사가?
네로
축제에는 먹거리 포장마차도 나오잖아?
밥에 꽃잎이 들어가면 가게 주인들은 곤란하겠지 싶어서.
오즈
……. 일리가 있다.
화이트
거 봐! 그대는 생각이 짧은 게다.
오즈
너도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겠지.
화이트
생각하고 있었네요─.
말하지 않았을 뿐이거든요─.
오즈
………….
네로
저, 자꾸 말해서 죄송한데…….
저를 사이에 두고 싸우지 말아 주세요…….
오즈
…….
……불꽃놀이 마법 도구를 만들겠다.
매개나 소재가 될 만한 것이 있는가.
화이트
소재로는 본인의 낡은 시계를 쓰지.
백 년을 산 것으로 만들어진 것일세.
오즈
그렇다면, 샐러맨더의 비늘과 천둥 독수리의 발톱이 매개겠군.
둘 다 내가 가지고 있다.
네로
아, 그럼 조립은 내가 할게.
세세한 작업은 일단, 못하는 건 아니니까.
(살았다…… 제발 그만 좀 싸워…….)
화이트
마법 도구, 완성~!
와─, 짝짝짝!
네로
와~…….
오즈
………….
화이트
뭐, 이렇게 흥이 없는 오즈가 딴지를 걸거나 하지 않는다면, 더 장난기 있는 것을 만들 수 있었을 터인데.
오즈
네 장난기에 사람이 죽는다. 나에게 아이들을 돌로 만드는 취미는 없어.
화이트
본인에게도 없네! 저 세공은 신중하게 안전을 고려하고 있었다.
멋없는 녀석,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는…….
오즈
………….
화이트
………….
오즈
<복스>.
화이트
<노스코>.
네로
자, 자, 자, 자. 저기, 쿠키 더 안 먹을래?
이번에는 커피맛.
화이트
앗, 또 주는 겐가? 와~!
오즈
……한 개 받도록 하지.
네로
사양하지 말고. 자, 세 개 먹으라고.
네로
(후우…… 역시 이 녀석들의 정답은 『싸우기 시작한 순간에 뭔가를 먹인다』구나.
행동거지가 바르니까 먹고 있는 동안에는 말하지 않아.)
(진짜, 마법 도구 하나 만드는 것만으로 몇 번을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이 녀석들, 스승과 제자 아니었나……?)
화이트
바삭바삭, 바삭바삭…… 응?
오즈
……묘한 기척이…….
???
구, 가, 아아아아아아!!!
네로
……! 지금의 비명 소리는……!
히스클리프
……좋아. 질문 접수는 이것으로 한 차례 완료했습니다.
루틸
포장마차, 굉장히 알찰 것 같아. 떠들썩하겠다!
클로에
그리고 『높은 무대』라든가, 『사진 명소』 같은 걸 우리가 만들고 싶지.
루틸
음, 『사진 명소』는 겉모습이 확 화려한 장소였나.
히스클리프
『높은 무대』라는 건 엄청나게 높은, 악단이나 댄서의 스테이지랬지.
클로에
이번에는 『사진 명소』 쪽이 좋을까?
현자님, 원래 세계에는 어떤 게 있었어?
현자
으음, 글쎼요…….
(문화제 같은 데서 많이 보던 그거지. 풍선 아트나 우산 거리 같은 건, 이 세계에서는 조금 어려우려나.)
(천이나 물감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이 세계에 SNS는 없으니까, 바라보는 것 외에도 즐길 수 있는 것…… 아!)
그렇다면 얼굴 내밀기 간판이 어떨까요?
히스클리프
얼굴?
현자
얼굴을 내밀 수 있도록 도려낸 커다란 간판입니다.
예를 들어 간판에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얼굴 부분에 구멍을 내는 거예요.
거기에, 간판 뒤에서 제가 얼굴을 내미는 거죠.
그 모습을 앞에서 보면…….
클로에
『현자님의 얼굴을 한 고양이』 그림으로 보인다!
아하하, 웃기다! 재밌어!
루틸
정면 모습을 스케치해 주면 더 즐거울 것 같아.
히스클리프
탈 가게 포장마차를 돕는 사람 중에 화가가 있었을 거야.
원래는 그림을 팔고 싶었다고 했으니까, 상담해 봐도 좋을 것 같기도.
클로에
무조건 오케이해 줄 거라고 생각해.
서쪽은 이런 걸 정말 좋아하니까. 나도 너무 좋아!
루틸
그럼 그 간판, 우리들이 만들어 보자!
그림은 내가 그릴게, 두 사람도 밑그림을 도와줄래?
클로에, 히스클리프
물론!
현자
저도 도와드릴게요!
세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커다란 나무판자와 많은 목탄이 나타났다.
곧바로 루틸을 중심으로 오오키니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루틸
얼굴을 내밀 구멍은 배에 만들까.
클로에
좋다!
현자
(자유로운 발상이네…….)
히스클리프
아이도 어른도 즐기는 것을 생각하면, 구멍의 위치는 이 정도가 좋을까.
그럼 여기가 배라고 하고…….
푸른 하늘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 문화제를 준비하는 방과 후 같아서, 두근두근 가슴이 설렜다.
오오키니님도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클로에
……계속 보고 있으니까 오오키니님이 점점 더 좋아져.
명랑하고 상냥해 보이지.
루틸
50년 전의 현자님도 좋아하게 돼.
오오키니님과 마찬가지로 명랑하고 상냥한 분이셨을까.
선대 현자님도 그런 분이셨겠지?
히스클리프
응.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지만, 활기차고 밝은, 좋은 사람이었어.
클로에
확실히, 현자님……. 앗, 지금의……. 음, 헷갈리니까 아키라님이라고 부를게.
현자
(콕 찝어서 이름으로 불렀다……. 왠지 기쁘네…….)
클로에
아키라님도 밝고 상냥한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이 현자가 되는 규칙인 건가? 아키라님, 알고 있어?
별 뜻 없이 한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현자
……어떨까요. 저, 현자의 기준이라든가, 아무것도 몰라서…….
수수께끼 같은 이 세계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왔지만, 아직 모르는 것도 많다.
어째서, 내가 현자로 선택된 것일까.
어째서, 나 따위가, 달에 저항하는 이 세계에서, 구세의 마법사들을 이끄는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일까.
지혜도, 힘도 용기도. 세계를 구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현자
………….
루틸
……. 근사하네요.
현자
네?
밝은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루틸이 미소 짓고 있다.
하늘에 흐릿하게 빛나는 <거대한 재앙>보다도, 훨씬 더 힘차게.
루틸
수수께끼 같은 운명에 이끌려, 어째서인지, 아키라님은 현자로 선택받아, 어째서인지, 우리들과 만났다.
그거, 왠지, 굉장한 이야기의 시작 같아요.
현자
……루틸…….
클로에
확실히! 최고의 이야기라는 건 무조건, 불가사의한 사건과 친구와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거잖아.
히스클리프
그렇다면, 아키라님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시네요.
아키라님은 상냥하고, 밝고, 공평하고…….
모두, 이야기의 주인공의 특징이니까.
클로에
정말이다! 현자님, 이야기의 주인공이네!
세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햇살처럼 동시에 미소 지어 주었다.
그들의 밝음과 상냥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달에게 선택받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다른 세계에,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다.
확실히, 이런 기적, 마치 이야기 같다.
현자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러분 쪽이에요.
상냥한 것도, 밝은 것도, 공평한 것도, 여러분 쪽이잖아요?
클로에
그, 그럴까?
히스클리프
그럴까요…….
루틸
그럼, 합쳐서 네 사람 모두─, 주인공으로 해요!
현자
아하하. 떠들썩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밝은 햇살 아래서 네 사람이 장난치며 웃는다.
황금빛의 오오키니님이, 역시 싱글벙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현자
(……하지만, 그러고 보니까…….)
(마법관에 마법사들이 살기 시작한 건 내 대가 처음이라고 들었어. 그때까지는 단순한 숙박 시설이었다고.)
(오오키니님을 알린 현자님은, 마법사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갑자기 내던져진 이 세계에서, 클로에나 루틸이나 히스 같은 사람은, 있었을까…….)
명랑하고 상냥해 보이는 미소.
오오키니님은, 혼자서 웃고 있다.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 아래서.
루틸
밑그림, 완성!
클로에, 히스클리프, 현자
오오~! 짝짝짝짝!
오후의 차 시간이 될 무렵, 간판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클로에
대단해! 오오키니님, 진짜 같아!
히스클리프
루틸, 사실적인 그림도 잘 그리는구나.
루틸
고마워. 평소에는 쾅! 하고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얼굴 내밀기 간판이라면 이쪽이 좋을까 해서.
클로에
음, 이제부터의 작업은…… 선 따기랑 채색이랑 구멍 뚫기인가?
히스클리프
그리고 간판을 안전하게 세우기 위한 세공이네.
공정이 많으니 나눠서 작업할까.
루틸
그럼 나는 선 따기를 시작해 볼게!
간판, 오오키니님 근처로 가져갈게.
클로에
응, 부탁해!
히스클리프
그럼 나는 간판 다리를 만들게.
깜빡 쓰러지지 않도록 강도도 계산해야겠다.
클로에
현자님은 나를 도와주지 않을래?
물감 대신 자른 천으로 간판을 색칠하려고.
현자
물론──.
???
구, 가, 아아아아아아!!!
클로에, 히스클리프, 현자
와악!?
사쿠리피큠
……!
히스클리프
지금 그건…… 미스라의 부적?
6화
현자
대체 무슨 일이…….
클로에
와앗, 루틸!? 오오키니님……!!
비명을 지른 클로에의 시선을 좇아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땅에 쓰러진 루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누운 루틸의 뺨이 이상하게 검붉다.
루틸
큭……. 놓으………….
현자
루틸!?
히스클리프
오오키니님이 루틸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질식하거나 뼈가 부러질 거야……!
클로에
……윽, 루틸에게서 떨어져!
<스이스피시보──>
히스클리프
<렙세바이브르프──>
???
아아아아아!!
두 사람의 마법보다 한순간 빠르게, 미스라의 부적이 빛을 발했다.
다음 순간 돌바닥에서 레녹스조차도 넘어설, 거대한 악마를 닮은 괴물이 튀어 오른다.
그리고 오오키니님에게 사납게 덤벼들었다.
악마
가, 아아아아아!!!
오오키니
……!
루틸
크, 켁, 콜록콜록…….
히스클리프
루틸!
클로에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루틸
모, 모르겠어……. 웅크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더니, 갑자기…….
악마
아아아아!!!
루틸에게 달려간 우리의 눈앞에서 악마가 오오키니님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대로 굵은 팔을 오오키니님의 목에 감는다.
우지직, 하고 불온한 소리가 났다. 오오키니님의 목을 꺾으려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의 현자님이 전한, 내 고향의 신상을.
현자
……기, 기다려…….
시노
히스! 현자!
네로
괜찮아!? 뭔 상황이야, 이게……!
어지러운 발소리에 뒤돌아보니 마법사들이 달려오던 참이었다.
오웬의 모습만 없다.
오오키니님을 부수려고 하는 괴물을 일별하고, 오즈가 지팡이로 돌바닥을 강하게 친다.
오즈
물러서라, 미스라.
악마
……. 가, 아아…….
히스클리프
아…… 미스라의 부적이 원래대로…….
화이트
<노스콤니아>
이어 화이트가 주문을 외우자 돌바닥 위의 오오키니님도 원래대로 굳어졌다.
네로가 몸을 숙여 아직 붉은 기가 도는 루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네로
부적이 반격했다는 건, 위험한 일을 당했다는 건가? 괜찮아?
루틸
네…… 저, 오오키니님이, 갑자기 저한테 덤벼드셔서…….
클로에
루틸을 짓눌러서 질식시킬 뻔했어.
클로에의 말에 오즈와 화이트가 눈을 날카롭게 가늘게 떴다.
네로도 옆모습을 험악하게 한다.
히스클리프가 오오키니를 힐끗 보았다.
히스클리프
저기…… 부적의 기척 때문에 알기 어렵지만.
오오키니님은…….
오웬
그 말이 맞아.
히스클리프
……읏, 오웬…….
오웬
저 동상에서 달의 기척이 느껴져.
재앙의 영향으로 미쳐가고 있는 거야.
사신처럼 나타난 오웬이, 불길하게 루틸에게 기대어왔다.
짓눌려서 생긴 멍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달콤하게 웃는다.
오웬
루틸에게 한 짓을 보면…… 악의와, 증오심을 품고.
클로에
……지금 몇 시지. 달이 떠오르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났는데.
히스클리프
거의 날짜가 바뀔 시간이야. 인적도 없어져 버렸네.
루틸
음…… 이 시간이 되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네.
클로에
정말, 엄청나게 조용해…….
오오키니
………….
루틸
……오오키니님, 오즈님이 마법으로 받침대에 되돌려둔 뒤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네요.
이렇게 보고 있으면 역시 명랑하고 상냥한 신으로 보이는데…….
히스클리프
………….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클로에
……옛날 현자님에 대해서?
히스클리프
응……. 정말로, 50년 전의 현자님이 우리들 현자의 마법사를 증오하고 있었던 걸까…….
클로에
……악의와, 증오심……?
히스클리프
……확실히, 재앙의 이변으로, 강한 부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나는 사례는 많이 봐 왔어.
하지만…… 이 동상에, 루틸을 짓눌러 죽일 듯한 악의를 품은 존재 따위가 있다니…….
오웬
너도 알고 있잖아? 루틸과…… 현자의 마법사와, 오오키니님을 연결하는 게 뭔지.
현자의 마법사에 대한 강한 마음을 이 동상에 깃들게 할 가능성이 있는 건, 누구?
시노
……50년 전, 이 동상을 세우게 했던 현자인가.
현자
……!
화이트
있을 수 없다.
본인, 수천 년을 살아왔건만 현자의 사념이 남은 예 따위 본 적이 없네.
오웬
흐응, 그러셔?
수천 년, 간단한 의식으로 돌아갔던 달이 바로 얼마 전에 우리들의 절반을 죽였는데?
그날이, 있을 수 없고, 본 적 없는 광경이었어.
화이트
허나…….
네로
……오웬을 지지하는 건 좀 그렇지만……
뭐, 여러모로, 앞뒤는 맞지.
『약속』 따위를 나눈 것도, 우리들이 마력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악의적인 일이라거나.
클로에
그런…….
현자
……언젠가의, 현자가…….
오즈
…………. 이 동상을 부수고, 축제에서 손을 떼겠다.
너희들의 마력에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키면 돼.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네……!?
현자
………….
오즈
지금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재앙의 영향이 아직 그다지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자의 마법사가 살해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재앙의 영향을 쫓아낸다 한들, 언젠가는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화이트
뭐…… 그렇겠지.
재앙의 영향이 없더라도, 기물은 때로 강한 정념을 품는다.
루콜라에게는 미안하지만, 동상을 때려 부수고, 이 건에서는 단호히 손을 떼는 것이 가장 안전할 테지.
루틸
기다려 주세요. 오오키니님은 아키라님께 있어서…….
현자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루틸
……아키라님……
현자
장래에, 여러분이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습니다.
클로에
그, 그래도……!
현자
그, 제 고향의 것이라면 여러분께서도 만들어 주셨고요!
타코야키라든가, 고기만두라든가!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신경 쓰실 것 없어요.
히스클리프
………….
현자
오즈.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즈
아아.
클로에
……!
……, 나…… 나는 싫어!!
화이트
클로에?
클로에
싫어, 오오키니님을 부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아키라님에게 있어서, 그리운 동상이잖아!?
아키라님, 오오키니님이 고향의 동상이라는 걸 알고 엄청나게…… 기뻐했잖아!
현자
그건…….
클로에
그렇다면, 나도 소중하게 여겨주고 싶어! 축제도 열어주고 싶어.
친구가 만난 보물을 부순다니, 나는 싫어!
아키라님도, 괜찮다고 하면 안 돼!
사실은 괜찮지 않은 거잖아……!?
현자
……아…….
클로에
읏, 미안……. 나…….
히스클리프
알고 있어. 현자님도, 알고 계시니까…….
현자
………….
루틸
……현자님. 저희들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당신을, 저희도, 소중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세요.
사실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현자
…………. ……사실…….
오오키니님을 부수고 싶지 않아요. 축제도, 약속대로 열고 싶습니다.
제가 50년 전의 현자님이었다면, 그렇게 해주길 바랐을 테니까.
……소중하게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원
………….
클로에
……아키라님…….
히스클리프
……이 이변이, 정말로 50년 전 현자님의 사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약속』을 했을 때의 현자의 서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현자님의 심정이나, 되살아난 사념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동상을 부수는 것 외의 해결책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자
……!
히스클리프
다른 세계의 말은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역대 현자의 서를 전부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 현자님께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키라님. 도서실에서 현자의 서를 찾아 주시겠어요?
7화
히스클리프
우리는 다른 세계의 말을 읽을 수 없어.
50년 전 현자님의 서를 읽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현자
네! 어학에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하지만, 반드시, 찾아낼게요!
히스클리프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몇 명이 여기 남아서 야간의 오오키니님을 감시하도록 하죠.
재앙의 영향은 밤에 강해지는 것도 많다.
오오키니님이, 누구의, 어떠한 사념을 품고 있는지…….
<거대한 재앙>이 떠오른 후가, 알기 쉬워질 테니까요.
현자
네……!
시노
좋아, 히스. 똑똑하다. 휘파람을 불고 싶어졌어.
히스클리프
……시노…….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잖아…….
네로
하지만 실제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때려 부수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화이트
문답무용이라는 것은, 조금 난폭했구먼.
현자야, 미안했다.
오즈
너의 마음을 짓밟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현자
아니에요! 사과하지 마세요.
모두를 지키고 싶다는 것도, 제 진심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클로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저를, 소중하게 대해주셔서.
클로에
……! 천만에……!
화이트
그럼, 클로에, 루틸, 히스클리프.
동상이 움직이는 것을 본 그대들이 감시역이 되도록.
오즈
나중에, 밤의 가호를 베풀지.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알겠습니다!
화이트
나머지 우리들은, 도서실에서 현자를 돕도록 하자꾸나.
오웬
하? 우리들? 나도 하는 거야?
시노
당연하잖아. 네가 꺼낸 이야기인데.
현자
세 분 모두. 부디, 오오키니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클로에
맡겨줘, 현자님!
클로에
………….
……현자님이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어. 그렇다고 할까, 알아줄 수가 없어.
내 고향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라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도 좋고,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어.
하지만…… 현자님의 고향은, 분명 다르겠지.
울어버릴 정도로 소중했던 곳에서, 모르는 세계에 혼자 내던져져서…….
……하지만, 그래도, 뭐라고 해야 할까……. 현자의 역할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루틸, 히스클리프
………….
클로에
나도, 어째서 이 역할을 짊어지게 된 건지 모르겠어.
다음 재앙전도 무서워…….
하지만, 달에게 선택받았으니까, 루틸이나 히스나 현자님이나, 마법관의 모두를 만날 수 있었어.
역시, 이 역할로 선택받은 나는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루틸
클로에…….
클로에
말로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히스클리프
……응……. 그렇지, 클로에.
클로에
아……. 히스, 손…….
히스클리프
나도, 그…… 여러모로,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마법관에서 클로에나 루틸 같은 친구가 생긴 건, 기뻐.
그러니까…… 이렇게 함께 기도하고 있자.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더라도…….
클로에
……응…….
루틸
괜찮을 거야, 분명.
자, 두 사람 뭉쳐서, 꼬옥!
클로에, 히스클리프
와앗…….
루틸
그렇지만, 갑자기 끌려온 다른 세계에, 이렇게 밝고 상냥해 보이는 신을 전해준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이 세계에 무섭고 슬픈 마음을 두고 가거나 하지 않을 거야.
분명 이 동상에는, 멋진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 거야.
달에게 선택받은 『현자님』이나, 우리들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클로에
루틸…….
히스클리프
아하하……. 루틸이 말하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돼.
루틸
후후, 그렇지?
자, 기운 내고──.
오오키니
……오……오오…….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
루틸
오오키니님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클로에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있어……. 뭔가를 찾고 있나?
히스클리프
조심해. 재앙의 기척이 강해졌어.
오오키니
……, …………!
클로에
왓, 이쪽을 봤어!?
루틸
받침대에서 뛰어내려서 달려온다!
히스클리프
두 사람 다, 마도구를…… 으악!?
루틸
히스!!
클로에
오오키니님이 매달렸어!?
스, 이스피시보─
루틸
기다려, 클로에!
오오키니님, 매달려 있을 뿐이야. 목을 조르거나 무서운 짓은 안 해!
클로에
응?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기세는 무서웠지만, 배를 꽉 껴안아서, 왠지 아이의 허그 같은……?
루틸
확실히, 내 학생이 안아줄 때 이런 느낌일지도…… 와악.
클로에
이번에는 루틸에게 매달렸다!
히스클리프
하지만…… 낮처럼 꽉 짓누르려고 하지는 않네. 부적도 조용하고…….
클로에
오오키니님, 우리들에게 위험한 짓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닌 걸까?
루틸
낮의 그것도, 기습적인 공격으로 나를 짓눌러 버렸지만 실은 허그하려고 했을 뿐이라거나…….
클로에
아, 봐봐!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봐!
오오키니
……오……니…….
클로에
……오오키니, 뭔가 말하고 있어……?
히스클리프
이 목소리,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오오키니
……오오……니.
오오……키……니…….
오오키니…….
루틸
그래, 이거 루콜라씨의 목소리와 닮았어!
이쪽이 좀 더 젊은 것 같지만…….
히스클리프
그리고, 『오오키니』는 『고마워』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루틸
그러니까, 루콜라씨와 닮은 목소리의 젊은 사람이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현자의 마법사에게 허그하고 있다는 건가?
클로에
……어쩌면, 오오키니님에게 깃든 사념은…….
오웬
현자님. 저쪽 책장에서 꺼내온 현자의 서, 여기 쌓아둘게.
현자
오웬, 감사합…….
화이트
잠깐만, 잠깐만! 거기, 본인의 그림 위잖나!
오웬
쳇, 들켰다.
시노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네로 앞 책상에 쌓아둘게.
마법관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50년 전 현자님의 『현자의 서』를 찾아 도서실을 뒤엎고 있었다.
네로
음, 현자씨, 이 책은 아닐 것 같아?
당신이 전에 쓰던 글자랑 조금 닮지 않았어?
현자
그건…… 전부 한자다!
그렇다는 건, 50년 전의 현자님일 가능성은 낮을지도…….?
오즈
이것은?
현자
이건…… 엑, 어느 나라 말이지……?
어, 어떡해, 이게 50년 전 현자님의 서라면…….
(그건 그렇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현자의 서를 일단 옆에 쌓아두고, 또 다른 서를 집어든다.
무엇이 쓰여 있는지는 읽을 수 없었지만, 이 책에도 꽤 꼼꼼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해 온 대다수의 현자의 서와 마찬가지로.
현자
(대충, 휙휙 넘겨 본 적은 있지만, 이전 현자님의 서 말고 다른 걸 이렇게 꼼꼼하게 읽은 적은 별로 없었지.)
(어…… 이쪽의 현자의 서는 영어다. 블록체니까, 읽을 수 있을지도.)
날짜나 연도나 『promise』라는 단어를 찾아 낡은 페이지를 넘겨 간다.
어떤 단어도 없었지만, 대신에, 페이지의 가장자리에 작게 쓰인, 어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듯한 글자를 발견했다.
『alone』.
현자
……외톨이.
시노
현자? 단서가 있었나.
현자
아니요…… 저는 힘든 시기에 현자가 됐지만, 그래도 축복받았다 싶어서.
저는 이 세계에 혼자 왔지만, 그다지 외톨이라고 느낀 적은 없으니까…….
네로
……현자씨…….
네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거기에 미소를 지을까 망설일 때 문득 그의 손에 들린 책에 눈길이 멈췄다.
표지에 작게 그려진 유니언잭과 빅벤.
현자
네, 네로의 그 책! 키홀더와 같은 모티브……!
네로
이거? 듣고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화이트
그대의 세계의 문양은 어렵구먼.
그렇기에, 이 당시의 현자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을 테지.
시노
즉, 이게 50년 전의?
네로에게 건네받은 현자의 서를 휙휙 넘겨본다.
현자
(영어다……. 다행이다, 아는 말이라.)
50년 전의 현자님도 부지런히 현자의 서를 적고 있었던 듯했다.
내용을 전부 읽을 수는 없지만, 상냥하고 부드러운 필체에 오오키니님의 미소를 떠올린다.
현자
(하지만, 그다지 읽을 수 있는 곳이 없어…….)
(유학생이라면 일본어를 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보통 일지는 모국어지…….)
이윽고 책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불현듯 나타난 페이지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8화
현자
어라……? 이 페이지부터 갑자기 아무것도 안 쓰여 있네요.
네로
응?
오웬
현자님, 눈이 이상해지기라도 했어? 쓰여 있잖아.
현자
네? 하지만…….
화이트
……이것은……. 현자, 책에서 떨어…….
화이트의 말을 전부 듣기도 전에 갑자기 시야가 아찔하게 일그러졌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뜨자…….
현자
……어? 여러분!?
현기증이 가라앉은 사이에 마법사들의 모습은 일절 없었다.
방금 전까지 바로 곁에 있었는데.
허둥지둥 좌우를 둘러보던 중 문득 가까운 책장에 눈길이 멈춘다.
현자
(저건…… 마법사들의 책장이었지. 모두가 책을 가져와 텅 비어 있던 선반에 두고 갔는데…….)
하지만 그 선반이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몇 년이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현자
(……혹시 여기는, 50년 전의…….)
숲의 나무들이 사각사각 흔들린다.
올빼미가 낮게 울며 밤하늘로 날갯짓한다.
촛불의 불꽃이 작게 흔들리며 가만히 희미하게 무언가를 태운다.
그런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이곳은, 고요했다.
발소리도, 문을 여닫는 소리도,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언제나 깜짝 놀라게 하는 폭발음도,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만이── 현자만이 도서실에.
현자
………….
달빛이 소리 없이 비쳐든다. 푸르고 맑은 빛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렇기에 나는, 현자는, 더욱 외로움에 얼어붙었다.
아름답네요, 라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
도쿄라면, 오사카라면, 거리의 불빛 때문에 저런 빛은 볼 수 없죠, 라며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자는, 이 세계의 외톨이.
현자
(그래. 나는 이 세계의, 외톨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네로
──씨, 현자씨!
시노
현자!
현자
……!
요란한 웅성거림이 귓가에 돌아오고, 나는 눈을 떴다.
시야 가득히 걱정스러운 듯 나를 들여다보는 마법사들의 얼굴이 들이닥친다.
동시에, 장난감에 싫증이 난 듯 오웬이 내 곁에서 훌쩍 떠나간다.
화이트
괜찮느냐?
현자
ㄴ, 네…….
방금 저, 어떻게 된 거였나요?
화이트
그 현자의 서에 마음이 빨려 들어가 잠시 환영을 보고 있었던 게다.
오즈
그 페이지에서는 서쪽의 마법의 기척이 느껴진다.
아마도 선대 마법사의 것이겠지.
화이트
확실히, 취하면 묘한 장난을 치는 녀석이 있었지.
변덕으로 현자의 서에 장난을 친 게로군.
현자
……장난…….
화이트
오웬이여. 용케도 현자의 마음을 미혹으로부터 되돌려 놓았구먼.
오웬
흥.
시노
현자, 위험한 걸 보지는 않았어? 서쪽의 장난은 가끔 도가 지나쳐.
네로
환혹에서 깨어났을 때 현자씨, 안색이 좋지 않았어.
걱정해 주는 그들의 얼굴을 나는 둘러보았다.
그리고 먼 곳에서 지금도 오오키니님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해 주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을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끌려온 다른 세계의, 막막한 고독.
그럼에도, 이 세계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소중한 사람들.
현자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제가 본 것은──.
그리고 다음날. 현자의 서를 가지고 오즈의 마법으로 다시 거리를 방문한 우리는──.
현자
엥!? 오오키니님이 걷고 있어!!
화이트
클로에 일행의 뒤를 뒤뚱뒤뚱 따라오고 있구먼.
클로에
앗, 다들! 안녕~!
루틸
안녕하세요~! 현자의 서, 찾으셨나요?
오즈
찾았다. 그런데…….
시노
먼저 그쪽 얘기부터 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클로에
실은──.
……이런 느낌. 그러고 나서 오오키니라고 말하면서 우리 뒤를 따라오는 거야.
히스클리프
신상에 깃든 사념의 주인은, 건립 당시의 루콜라씨의 부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념이, 상의 이름을 반복하고 있다.
혹은…….
루틸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저희에게 감사를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고맙다』라며.
현자
……저도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이 50년 전의 현자의 서입니다.
이것을 읽고 있을 때 저는 과거의 마법관을 봤어요. 정말, 정말, 고요한…….
내가 본 것을 세 사람에게도 설명하자 그들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루틸
그랬군요…….
히스클리프
……악의나 원한의 사념이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클로에
……외로웠던 거구나. 50년 전의 현자님은…….
현자
…………. 그렇죠…….
아침의 거리에 느긋하게, 습한 바람이 분다.
눈물 자국을 어루만진 것처럼, 스르륵 뺨이 식어간다.
오오키니
……오오키니……
오오키니…….
화이트
어머. 오오키니 신상이 현자의 품으로…….
우리를 싱글벙글 바라보고 있던 오오키니님이 뒤뚱뒤뚱 내게로 다가왔다.
껴안고 싶어 하는 건가 생각하고 살짝 허리를 숙인다.
오오키니
오오키니…….
하지만 오오키니님이 손을 뻗은 것은, 내가 안고 있던 50년 전의 현자의 서였다.
표지에 그려진 유니언잭과 빅벤에 황금빛 손끝이 닿는다.
50년 전의 현자님이 전 영주님께 맡긴, 약속의 표시.
부드러운 눈이 문득 나를 정면에서 바라본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기쁜 듯이.
감사를 담아.
오오키니
오오키니.
현자
……아…….
현자는 외톨이. 이 세계의 이방인.
홀로 이곳에 와서, 홀로, 이 세계를 떠난다.
현자
(그래도…….)
오오키니님이 팔을 벌린 것과 동시에 나도 팔을 벌렸다. 서로를 꼭 껴안는다.
누군가의 체온처럼, 오오키니의 금속으로 된 몸이 기묘한 열을 지니고 있다.
내가 품에 안고 있던 50년 전의 현자의 서와, 똑 닮은 온도.
현자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셔서.
현자님과의 약속을, 기대해 주셔서…….
목소리가 떨렸지만, 미소 지었다. 오오키니님도 웃고 있다.
외톨이가 되어 고독해도, 이 세계의 누군가와 주고받은 말이 있다.
주고받은 마음이 있다.
피부의 온기처럼, 떨어지자마자 금방 희미해져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따뜻하게.
클로에
………….
……전 영주님. 50년 전의 현자님.
살짝 어깨가 따뜻해져서 뒤돌아보니 클로에가 있었다.
미소 지으며 나와 오오키니님을 함께 껴안는다.
클로에
축제, 무조건 멋지게 만들게.
우리들 현자의 마법사와, 지금의 현자님으로, 반드시 힘낼 거야.
오오키니
오오키니, 오오키니…….
기쁜 듯이 중얼거리며 오오키니님이 클로에를 마주 껴안는다.
그것을 더욱 감싸 안듯이, 우리 뒤에서부터 꽉, 따뜻한 팔이 둘러졌다.
뒤돌아본 우리와 눈을 맞추며, 루틸과 히스클리프가 미소 짓고 있다.
루틸은 밝고 상냥하게. 히스클리프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루틸
자! 여러분도!
화이트
물론일세. 이보렴, 오즈 그대 또한 마찬가지다.
오즈
………….
시노
네로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빨리 와.
네로
나랑은 안 어울리지만…….
다른 마법사들도, 쓴웃음을 짓거나 하면서도, 우리를 포함해 꽉꽉 오오키니님을 껴안았다.
현자
으악……! 오시쿠라만쥬 같아……!
클로에
꾹꾹 누르고 있어……!
떨어져서 딴청을 피우는 오웬의 곁에도 사쿠쨩이 둥실둥실 다가가서, 꽉꽉 몸을 밀어붙이고 있다.
9화
우리는 한껏 뒤엉켜, 곁에서 보면 꽤나 초현실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즐겁고, 너무나, 너무나도 따뜻했다.
괜히 웃음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뒹구는 나를, 내 친구가 보라색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올곧게.
클로에
아키라님. 외롭지 않아?
현자
그럼요!
망설임 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마도, 분명히. 너무 웃은 탓인지 내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그 물방울이 소리 없이 오오키니님에게 떨어진 순간, 두둥실 눈앞에 부드럽게 빛났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본다.
꿈에서 만났던 누군가와 같은, 희미한 모습.
상냥한 말.
따뜻한, 진심 어린 격려.
함께 웃었던 하룻밤.
중앙의 사자로부터 받은, 낯선 키홀더.
가슴에 솟아나는, 나의, 아니, 분명 전 영주님의 기도.
고마워요, 현자님. 50년 뒤를, 기다리고 있을게.
현자
아…….
정신이 들었을 때, 오오키니님은 이미 원래의 받침대로 돌아가 있었다.
루틸, 히스클리프
돌아왔다! 만세─!
클로에
다행이다─!
잘됐네, 현자님……!
현자
네!
클로에의 말에 웃으며 끄덕였다.
그 환상은, 나에게만 보였을 거라고, 어쩐지 생각했다.
상냥하고 따뜻한 미소가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다.
맑개 갠 푸른, 다른 세계의 하늘 아래서.
그리고 며칠 뒤──.
화려한 등불과 활기찬 북적임에 둘러싸여 축제가 무사히 시작되었다.
시노
축제, 꽤 성황이네.
오웬
…….
시노
오, 타코야키 포장마차도 나와있다.
저거, 이상한 요리지만 맛있잖아. 나중에 사 먹어야지.
저쪽은…… 주스를 끼얹은 얼음?
주스가 밍밍해질 것 같지 않아?
오웬
…………. 저기.
시노는 왜 나한테 들러붙어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거야? 짜증 나는데.
시노
들러붙는 건, 쌍둥이가 부탁했으니까.
그 녀석들, 수고비를 넉넉하게 줬거든. 받은 돈만큼의 일은 해.
떠드는 건, 네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어차피 대답을 안 할 거면 뭘 떠들든 상관없잖아.
오웬
무슨 논리야? 됐으니까 어딘가로…….
………….
시노
왜 그래, 갑자기 멈춰 서서.
오웬
저거 봐. 다른 세계의 『붕어빵』 포장마차.
시노
뭐? ……으악. 구운 생선의 배에 초콜릿을 가득 채우고 있어.
현자의 세계의 요리, 제정신인가?
오웬
진짜 『붕어빵』은 저런 게 아니야.
물고기 모양 파이 안에 단팥방 속을 채운 거라고 했어.
현자님이 가르쳐 준 『붕어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네.
시노
뭐, 현자의 설명은 가끔 서투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건 심하잖아.
구운 생선에, 끈적하게 녹은 달콤한 초콜릿이라니…….
오웬
………….
시노
오웬?
오웬
뭐…… 틀리긴 했지만, 달콤해 보이기도 하고…….
맛없으면 시노 입에 쑤셔 넣으면 되고……. 하나 뺏어와 볼까.
시노
하!? 장난치지 마, 나를 뭐라고…… 큭, 망할, 이럴 때만 걷는 게 빠르네!
어이, 기다려, 바보! 절대로 못 사게 할 거다, 오웬!
줄 뽑기 가게 주인
자, 자, 어서 와! 다른 세계의 진귀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초코 과일 가게 주인
현자님께서 직접 전해주신 과자다! 현자의 마법사가 여는 축제니까, 기념으로 하나는 먹고 가야지!
네로
(이런, 서쪽의 상인은 활기차고 씩씩하네. 축제도 이 규모의 마을에 비해서는 대성황이야.)
(적당히 어슬렁거려 보고 있지만, 재앙이나 묘한 마법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무사히 성공했다는 건가.)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어서 와, 어서 와! 다른 세계 명물, 『물고기 건지기』 하고 가!
네로
오…… 시노가 돕고 있던 곳이네. 물고기 건지기…… 흠…….
화이트
어이─, 네로여~!
네로
우왓…… 화이트랑 오즈구나. 그, 안녕.
오즈
안녕.
네로
저기, 두 분은 왜 이쪽으로……?
오즈가 액자를 들고, 스노우랑 셋이서 어슬렁거리는 게 아니었어?
화이트
그게, 스노우가 시노와 오웬 쪽으로 가버려서 말일세.
네로
어…… 시노랑 오웬 쪽으로? 뭔 일 있었어?
화이트
『무척 재미있는 예감이 드는구먼』이라며.
네로
뭐야, 평화로운 건가…….
오즈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네로
딱히……. 지금은 『물고기 건지기』 포장마차를 보고 있었어.
오즈
아아…… 관상어를 잡는 포장마차인가.
네로
맞아, 맞아. 하지만 여기는 관상어가 아니라 식용의 작은 물고기를 잡나 봐.
그래서 그 자리에서 손질해서 바삭하게 튀겨준대.
화이트
오오, 좋지 않은가! 본인, 팔딱팔딱 뛰는 작은 생선튀김, 먹고 싶어~!
그런고로, 네로, 오즈. 부탁한다.
네로
왜??
오즈
알아서 해라.
화이트
무례한 말을 하지 말거라. 밤의 본인은 그림, 즉 본체는 종이다.
물에 가까이 가서 녹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네로
……밤이 되고 나서도, 주방에서 평범하게 수프 만들지 않았어?
오즈
욕탕에 드나드는 것도 봤다. 바에서 술도 마시고 있었다.
단지, 물고기 수조는 비린내가 나니까 가까이 가고 싶지 않…….
화이트
시끄럽네, 시끄럽네─! 둘이서 하라면 하는 거다! 명령!
네로
횡포의 화신인가.
화이트
가게 아저씨─! 이 두 아저씨, 물고기 건지기 한대!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오─! 꼬맹이네 일행, 현자의 마법사들이잖아.
물고기 건지기에 어서 오십쇼!
자, 형씨들, 망이랑 그릇을 받으시고. 이 들채로 물고기를 건져내는 거야.
오즈
들채?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뜰채』라고 한대. 이게 물에 불어서 찢어지기 전까진 몇 마리든 물고기를 잡아도 돼.
자, 힘내서 해줘!
네로
힘내라고 해도 말이지.
뭐, 으음……. 영차. 앗, 잡았다.
어, 오오, 잡았다…….
물고기 건지기 가게 주인
형씨, 소질 있네! 다른 형씨는…….
오즈
…….
………….
네로
오…… 성대하게 가버렸네.
오즈
……내 뜰채가, 천이 더 얇았다.
네로
순식간에 물건 탓으로 돌리지 마.
오즈
아?
네로
미안합니다. 기세를 타버렸습니다.
으음, 봐봐, 자, 새로운 뜰채 가지고.
얕은 곳에 있는 녀석을 노려서, 이렇게, 휙 하고…….
오즈
……휙…….
네로
좀 더 재빨리…….
오즈
휙.
네로
우왓! 곰이 물고기 잡는 게 아니잖아, 좀 더 부드럽게…….
화이트
으음─ 난항을 겪고 있구먼. 본인이 응원해 주마!
화이트
힘내라, 힘내라, 두 사람 다─!
잡아라, 잡아라, 물고기─!
둥둥 둥둥! 둥둥 둥둥!!
네로
켁! 물고기 도망갔어!!
오즈
……시끄럽다.
클로에
고리 던지기라는 놀이, 말발굽 던지기 놀이 같아서 재밌었지!
루틸
경품 사탕도 받았고 말이야!
히스클리프
현자님께서도, 원래 세계에서 하면서 노셨나요?
현자
그렇습니다! 그립네.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축제를 쏘다닌다.
타코야끼를 조심스럽게 먹어보거나, 야구 게임에 도전하는 사람들.
다들 다른 세계의 것에 놀라거나, 가끔은 의아해하면서도 흥미로워한다.
오오키니님의 간판에 얼굴을 끼워 넣는 사람들과, 그것을 그려주는 초상화 가게에 길게 늘어선 줄에, 넷이서 슬며시 웃었다.
현자
(축제, 성공해서 다행이다. 거리의 모두도, 클로에와 루틸과 히스도, 즐거워 보여.)
루틸
……앗! 보세요, 저 『달고나 뽑기』 포장마차.
클로에
저건…… 그림을 도려내는 건가? 루틸, 좋아할 것 같아!
현자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히스도 좋아하지 않을까.
히스클리프
저, 저도……?
루틸
다 같이 해 봐요. 고─!
현자
(윽…… 달고나 뽑기는 과자로 만든 틀을 바늘로 콕콕 찔러서 도려내는 것뿐인데…….)
앗……
달고나 뽑기 가게 주인
아이고─ 깨져 버렸네. 어떡할래, 한 장 더 해볼래?
현자
ㄴ, 네…….
(이렇게 어려웠나!? 오랜만이라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클로에
……읏, ……음……. 아, 위험해…….
……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현자
(클로에, 꽤 잘한다! 바느질에 익숙해서 그런가. 루틸은…….)
10화
루틸
아저씨─, 한 장 더…… 음, 세 장 주세요─.
달고나 뽑기 가게 주인
세 장?
루틸
금방 깨져 버려서요.
달고나 뽑기 가게 주인
쿨하구나……. 자, 여기.
간단한 모양으로 해놨다.
루틸
상냥하시네요! 힘내자─!
……앗, 깨졌다.
현자
(빨라…….)
루틸
다음이야말로!
……앗. 다음…… 앗…….
…….
………….
클로에, 히스! 화이팅~!
클로에
정말─. 루틸은 금방 질린다니까.
루틸
응원으로 전환했을 뿐인걸. 히스도 힘내!
히스클리프
……응…….
클로에
히스, 될 것 같아?
히스클리프
응…….
현자
응원할게요!
히스클리프
…….
루틸
히스, 안 듣고 있지.
히스클리프
응…….
루틸, 클로에
후후…….
클로에와 루틸이 작게 어깨를 흔들며 웃는다.
늘 어른스러운 히스가 막내답게 자유로운 태도로 놀이에 몰두하고, 두 사람의 따뜻한 시선을 받고 있다.
즐거워 보이는 세 사람의 모습을, 나 또한 웃으며 지켜보았다.
미소 짓는 듯한 부드러운 달빛이, 하늘 높은 곳에서 살며시 내리고 있다.
클로에
달고나 뽑기, 어려웠다~!
루틸
그래도 즐거웠지. 히스랑 클로에는 무사히 경품도 받았고!
현자
히스는 가장 어려운 모양도 단번에 성공했죠. 역시 대단해요!
히스클리프
아하하, 감사합니다. ……아.
작게 중얼거린 히스의 시선을 따라가자 오오키니님 신상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모두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다.
즉석 계단으로 받침대에 올라, 오오키니님을 꼭 껴안는다.
마을의 여성
오오키니님의 가호가 있기를! 자, 너도.
마을의 소녀
있기를─! 꼬옥─!
클로에
아하하. 귀여워.
루틸
우리가 오오키니님을 껴안은 뒤로 『껴안으면 효험이 있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지.
히스클리프
응. 누군가가 우리 모습을 보고 있었던 거겠지.
꼬옥, 꼬옥, 하고 여러 사람에게 껴안겨도 오오키니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현자
(그래도…….)
클로에
……이걸로 이제, 외롭지 않으려나.
나에게 다가와 클로에가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멀리 있는 나무들의 웅성거림.
올빼미가 날아가는 소리.
촛불이 흔들리며 무언가를 태우는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떠들썩하고 밝은 소리에 지워져.
현자
외롭지 않을 거예요. 분명.
루틸
앗! 불꽃놀이다!
히스클리프
네로네가 만든 마법 도구네.
클로에
예쁘다~!
짙푸른 하늘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숨이 멎을 듯한 커다란 꽃송이가 핀다.
그것에 홀린 듯 어디선가 요란한 음악이 들려왔다.
축제도 음악도 춤도 정말 좋아하는 서쪽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자유로이 춤추기 시작한다.
서쪽의 마법사 클로에 또한, 들썩들썩 그 자리에서 발을 구른다.
힐끔힐끔 나를 보거나 히스클리프나 루틸을 보거나 하며 정신없다.
축제도 음악도 춤도 정말 좋아하는 클로에 외에는 서쪽 출신이 여기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뒤에서 그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클로에가 나를 돌아보고는 감사를 표하듯이 활짝 미소 짓는다.
그리고 용감하게, 다리처럼, 두 친구의 팔을 잡았다.
루틸, 히스클리프
왓!
클로에
있잖아, 같이 춤추자! 루틸, 히스!
남쪽의 마법사 루틸은 놀란 후 포근하게 웃고 있었다.
동쪽의 마법사 히스클리프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래도 수줍게 웃는다.
히스클리프
좋아. 그런데 셋이 동시에 춤추는 거야? 그런 춤, 있었나?
루틸
없으면 만들면 되지!
현자
맞아요. 제가 손뼉을 쳐드릴게요!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친다. 모두가 빙글빙글 돈다.
세 사람은 키는 같을지라도, 보폭도, 움직이는 버릇도, 돌고 싶어 하는 방향도, 완전히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삐뚤빼뚤한 자세가 되어 서로 부딪히고, 가끔 넘어질 뻔하면서도, 세 사람은 웃고 있었다.
축복처럼, 불꽃이 계속 피어난다.
클로에
있잖아!
루틸
왜 그래?
클로에
재밌지!
히스클리프
아하하, 응. 정말 재밌어.
축제에서 이렇게 춤을 추다니, 마법관에 오기 전까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루틸
우리들, 얼마 전까지는 친구가 아니었다니, 역시 뭔가 이상한 느낌이야!
좀 더 훨씬,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것 같은데.
클로에
그럼, 지금부터 정말로, 엄청 오랫동안 알고 지내자.
천 년 뒤에 『현자의 마법사』로 축제를 열고, 다시 함께 춤추는 거야.
그때쯤이면 우리들, 천 년의 친구야!
우연히 키가 같았을 뿐인, 성격도 출신도 모든 것이 다른 마법사들.
그들이 같은 시대에 달로 선택받아서 함께 현자의 마법사가 된 것.
그리고, 평범한 나날 속에서 우정을 깊게 하고, 아름답고 눈부신 불꽃 아래서 장난치고, 웃고, 춤추고 있는 것.
그것을, 원래라면 이 세계에 없었을 내가 손뼉을 치며 지켜보고 있는 것.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고, 불가해하고,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무척이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달에게 선택받은 기적.
루콜라
현자님. 여기 계셨군요!
현자
아, 루콜라씨!
루콜라
우선 다시 한번, 오늘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50년 전의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전에 말씀드렸던, 축제 당일에 열라고 적혀 있던 봉투를 조금 전에 열어봤습니다.
현자
아아! 『50년 후 개봉!』인 그거죠.
안에 뭐가 들어 있었나요?
루콜라
그게…….
내 앞에 내밀어진 것은 두 장의 편지지였다.
현자
이 편지…… 영어랑 일본어?
루콜라
이거, 다른 세계의 말이죠?
현자님 앞으로 적힌 편지라고 생각해서,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부디, 읽어 주세요.
일본어로 적힌 편지지를 슬며시 펼쳐본다.
시간이 흘러간 종이의, 부드럽고 희미해진 필적을 좇는다.
50년 전의 현자의 편지
『이것을 읽고 계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일본어 또는 영어를 읽고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읽고 계신다는 것은, 그대는 저의 약속을 지켜 준 것이겠지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원래라면, 제가 이 거리를 방문해서 오오키니님을 보고,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현자는 서쪽 국가에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언젠가 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제가 그 무렵에 이곳에 있을지는 알 수 없죠.』
『저는 본래라면 이 세계에 있을 수 없는 인간입니다.』
현자
………….
50년 전의 현자의 편지
『그러니, 50년 후의 미래, 정치 정세가 분명히 바뀌어 있을 무렵의 그대와,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께 맡깁니다.』
『마법사는, 무엇을 제쳐두고서라도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고 들었습니다. 『약속』은 그들에게 강력한 힘을 가져다준다고.』
『만약 그대들도 저처럼 성가신 일에 휘말려 있었다면, 이 『약속』이 그것을 이겨낼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자
……그래서 약속을…….
50년 전의 현자의 편지
『영주인 아루굴라씨에게. 원래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울음을 터뜨린 나에게 손수건을 빌려줘서 고마워.』
『헤어질 때, 『우리는 이제 친구다』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현자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께.』
나는 클로에 일행에게 눈짓을 했다.
이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 사람이 손을 잡은 채 내게 다가온다.
그 온기에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필적으로 적혀 있던 심플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현자
『현자의 마법사 여러분께. 약속을 지켜주고, 축제를 열어줘서 고마워요.』
『오오키니!』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
얼굴을 마주 본 세 사람이 동시에 웃으며, 꼬옥 나를 껴안았다.
따뜻하게 뒤엉키면서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외톨이가 아닌, 낯선 세계에서.
루틸, 클로에, 히스클리프
저희야말로, 오오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