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화 그들의 양보
동쪽의 마법사는 사람을 싫어하고 낯을 가리며 폐쇄적이다.
그래서 높은 분들의 시찰 같은 이벤트는 정말 싫어한다.
애초에 주목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엿보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씁쓸한 얼굴로 맡아주었지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엿보고 있다는 걸 알고서 평소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발안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
『동쪽의 마법사가 평소에 어떤지를 보고 싶다면 뛰어난 마법으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몸을 숨길 필요가 있다』
『빈센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상 이 사찰은 엉터리다. 평소의 모습 따위, 볼 수 없으니까』
그러한 점들을…….
『뭐, 현자씨가 하고 싶다면 해도 상관없긴 한데……』
라는 느낌으로 어울려 주고 있다.
그러니, 문을 열었을 때 동쪽의 마법사들이 여기 없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쪽의 마법사들은 있었다.
책상에 앉아 각자 책을 읽고 있다.
실내는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라몬드
현자님…… 동쪽 국가는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파우스트
자습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파우스트가 대답했다.
다른 세 사람도 묵묵히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독서하는 모습 정도라면 견학하게 해줘도 좋다』라는 거겠지.
까탈스럽고 까칠한 동쪽 국가의 기질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양보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교적인 중앙 국가와 남쪽 국가의 마법사들과 그럭저럭 우호적인 교류를 하고 온 빈센트씨는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양보가 아니라 뻔뻔한 반항으로 보인 것이겠지.
손뼉을 두 번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빈센트
시작해라. 즉시.
시노
………….
파우스트
………….
네로
………….
히스클리프
………….
동쪽의 마법사들은 발끈했다.
무시하기로 작정한 건가 싶었더니, 이윽고 히스클리프가 빈센트씨 일행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는 동쪽 국가 대귀족의 아들로, 국가와 가문도 등에 짊어지고 있다.
빈센트씨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히스클리프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파우스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숨을 내쉬고, 탁 하고 책을 덮었다.
파우스트
손님이 구경할 만한 볼거리는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빈센트
상관없다.
너희의 평소 훈련을 보여라.
네로, 시노, 히스클리프
………….
『당신들이 보고 있는데 평소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우스트
그럼, 어제 수업을 이어서 하지.
시노
실기가 아닌 건가. 실기로 하자.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
히스클리프
네 실력은 내가 알고 있으면 돼.
아니면, 중앙 국가에서의 출세를 바라는 건가.
정치적 사정에 어두운 시노를 히스클리프가 목소리를 낮춰 질책한다.
확실히, 만에 하나 빈센트씨가 시노를 마음에 들어 해 버린다면 꽤 복잡한 문제가 된다.
시노는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히스클리프의 발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득의양양하게 뽐낸다.
시노
호오. 말할 수 있게 됐잖아. 그렇다면 자제해야지.
파우스트. 시작해라. 즉시.
파우스트
다음에 말하면 저주하겠다.
그럼, 네로. 어제의 복습이다.
문트의 법칙의 설명을.
2화 문트의 법칙
네로
그런 이름, 어제 나왔었나……?
남자? 여자?
파우스트
문트는 여성이다. 하지만 법칙의 내용에 성별은 관계없다.
너는 알고 있겠지.
네로
나, 그거 쓰고 있어?
파우스트
항상 쓰고 있다.
쓰고 있다고 할까, 그것은 원리로써 작동하는 하나의 법칙이다.
네로
음…….
파우스트
알겠다. 네로, 고맙다.
시노, 대답할 수 있겠나?
시노
문트의 법칙?
나도 쓰고 있는 법칙인가?
파우스트
쓰고 있다. 마력의 기초다.
동쪽의 마법사의 기질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시노
이미 쓰고 있다면 거기 붙은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어?
파우스트
알았다. 고맙다, 아기고양이.
시노
아기고양이?
파우스트
오늘부터 네 이름이다.
붙어 있는 이름에 의미는 없는 것이겠지.
다음, 히스클리프…….
시노
기다려! 아기고양이라고!?
좀 더 내 실력에 걸맞은…….
파우스트
쉿. 조용히, 아기고양이.
시노
네로! 저 선생, 모욕하고 있다!
네로
네가 먼저 모욕했잖아.
선생이 가르쳐준 것 정도는 제대로 기억해 주라고.
시노
네가 할 말인가?
네로
그렇게 말하면…….
파우스트
너희들, 조용히 해.
히스클리프, 대답할 수 있나?
시노를 타이르려던 히스클리프는 파우스트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히스클리프
네. 문트의 법칙은 마법 심리 작용의 법칙 중 하나입니다.
집중하면 할수록 마법 작용이 강해지는 대신, 다른 감각을 잃고 시야가 좁아집니다.
파우스트
그 말대로다.
감각을 잃는다…….
히스클리프의 답변에 나는 불안해졌다
마법의 구조를 모르는 채 항상 부담을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현자
저, 파우스트…….
저도 질문해도 될까요?
파우스트
뭐지?
현자
마법에 집중하면, 어떠한 신경이 손상되어 버리는 건가요……?
파우스트
아니다. 지각할 수 없게 될 뿐이다.
현자
지각할 수 없다…….
파우스트
그래. 인간에게도 같은 일이 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니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놓친 적은?
현자
아아, 있습니다.
이름이 불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거나…….
파우스트
그것과 같은 것이다.
마법은 마음으로 사용하지.
마음이 집중될 때일수록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지각 능력이 둔해진다.
너희들도 경험이 있겠지. 특히 시노는.
시노
강한 마물을 쓰러뜨릴 때, 주문을 외우면 무음이 되는 경우가 있다.
금방 돌아오지만…….
파우스트
그렇군……. 그 정도까지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마법의 기술이 숙달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너에게는 조금 더 서둘러 여러 가지 가르쳐줘야겠군…….
파우스트는 웃지도 않고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시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시노
이 이상 숙제를 내는 건 그만둬.
어째서, 특히 나라고 말한 거지.
파우스트
상대적으로, 동쪽의 마법사답지 않기 때문이다.
시노
동쪽의 마법사답다는 건?
파우스트
나도 오랫동안 폭풍의 계곡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만…….
동쪽의 마법사다움이란 즉, 조심성이다.
우리는 위험할 때도, 안락할 때도 조심한다.
다시 말해, 문트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일극 집중의 마법은 동쪽의 마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심성이 많고 경계심이 강한 자는 주위의 기척에 과민하여 집중을 잘하지 못한다.
안심할 수 있는 환경 이외에서 몰입하는 것을 싫어하지.
시노
그럼 동쪽의 마법사는 강해질 수 없다는 건가?
집중하는 편이 강한 마법을 쓸 수 있잖아?
파우스트
일률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일극 집중을 잘 못하는 대신, 동쪽의 마법사는 병행 마법을 잘한다.
현자
병행 마법……?
턱을 괸 채로, 네로가 웃었다.
네로
요리 같은 거겠지.
여러 개의 마법을 한꺼번에 걸고 동시에 진행시키는 거야.
재료를 자르면서 냄비를 끓이거나 그릴에 굽거나 접시를 씻거나…….
멀티태스킹을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동쪽의 마법사는 멀티태스킹을 잘할 것 같았다.
파우스트
병행 마법은, 복수(複数) 마법이라고도 불린다.
복수 마법에는 집중과 부감이 동시에 필요하다.
3화 의외의 특기
시노
부감이 뭔데?
파우스트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히스클리프
시노에게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시노
이미 하고 있어.
히스클리프
못 하고 있어.
쓴소리를 쏟아내는 히스클리프 옆에서 네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로
중앙의 마법사들보다는 잘할지도 모르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노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중앙 녀석들은 무대포니까.
동의를 구하듯 네로는 파우스트에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그는 전 중앙의 마법사다.
파우스트
복수 마법 이야기를 계속하지.
복수 마법에 익숙해지면, 어떠한 고도의 마법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시노
하고 싶어.
파우스트
익숙해지면, 이라고 말했을 텐데.
히스클리프
선생님은 하실 수 있으신가요?
파우스트
대강은.
하지만 네로가 더 잘하는 것 같다.
네로
오, 뭐야. 어떤 마법?
네로를 바라보며 파우스트는 말했다.
파우스트
봉인 마법이다.
네로
………….
턱을 괸 채로, 네로는 웃었다.
네로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냐.
파우스트
고도의 봉인 마법은 복수의 매개체나 마법진을 이용하는 기계의 설계처럼 치밀하고 복잡한 것이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를 동시에 조립해 그것을 한순간에 연결하는 집중력과 전체 파악 능력이 필요하지.
시노
히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히스는 시계라든가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하니까.
히스클리프
봉인이라…….
마물이 봉인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자신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상대도 봉인할 수 있는 건가요?
파우스트
할 수 있다.
마력의 차이를 기술로 능가하는 것이 봉인이다.
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넋 놓고 듣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 질문한다.
현자
봉인 마법은 조심성이 많은 동쪽의 마법사가 잘한다고 하셨는데…….
북쪽의 마법사는 어떤가요?
그들은 자주, 오즈를 봉인한다든가 누군가를 봉인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파우스트가 입을 열려다 네로에게 시선을 향한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한 네로의 모습에 웃으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파우스트
말해줘.
네로
어, 아니. 그러려던 게…….
파우스트
네 방에서 술을 마셨을 때 이야기한 느낌으로는, 봉인이라면 네가 더 잘 안다.
시노
그런가. 의외의 특기가 있었네.
히스클리프
요리는 병행 작업의 기본 같은 거니까.
네로
아─…… 그렇지.
네로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고 나에게 몸을 향했다.
네로
이렇게 생각하면 돼.
일반적인 봉인이라는 건, 봉랍과 같은 거야.
현자
봉랍? 중요한 편지에 밀랍을 떨어뜨리고 스탬프를 찍어서 봉하는 그거요?
네로
맞아. 여는 건 간단하지만, 열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어.
열지 않은 척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
확실히 그렇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네로
북쪽 마법사의 봉인은 이래.
튼튼한 바위에 깊은 구멍을 뚫어서 중요한 걸 채워 넣고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물리적으로, 아무도 무거운 뚜껑을 치울 수 없어.
하지만 치울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히스클리프
한 번도 열지 않은 척하면서, 다시 닫을 수 있다?
네로
그래. 그러면 봉인의 의미가 없지.
현자
고도의 봉인이라면 그게 불가능한 건가요?
네로는 어째서인지 분한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로
맞아. 봉인을 풀려고 한 순간. 그 마법을 건 당사자가 바로 알 수 있어.
운이 나쁘면 당사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보가 가는 장치가 걸려 있을 수도 있지.
숲 전체에 쳐놓은 실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주 조금이라도 걸리면, 숲 전체가 잿더미가 되고 봉인한 마법사가 달려오는 거야.
네로의 이야기에서는 진실성이 느껴졌다.
자신이 체험한 듯한 긴박감과 골치 아픔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신기한 점도 있었다. 파우스트가 그것을 입에 담는다.
파우스트
마치, 봉인을 해제하는 쪽의 시점 같군.
4화 성스러운 마법사
네로는 말없이 파우스트를 돌아보았다. 손뼉을 치고 웃음을 터뜨린다.
네로
아하하!
파우스트
…………? 뭐가 웃겼던 거지?
네로
아니, 역시 나는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말야.
정말 선생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네.
파우스트
무슨 일인가, 갑자기 아첨을 하고는.
네로
아니 아니, 진심이라고.
시노
네로. 너 지금 웃으면서 얼버무리는 기술 쓰지 않았어?
네로
입 다물고 있어, 아기고양이.
시노
아기고양이라고 하는 거 그만둬!
히스클리프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나도 언젠가 봉인 마법을 사용해 보고 싶고, 풀어 보고도 싶다.
네로
어. 히스에게는 잘 맞을 것 같아.
네로는 히스클리프에게 미소 지었다.
유능한 제자를 지켜보는 듯한 상냥한 눈빛이었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파우스트도 미소 짓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음침하고 까다로운 분위기가 나는 인물이지만, 웃으면 딴사람이 된다.
가끔 보이는 부드러운 표정은 고결하고 선량한 도사 같았다.
갑자기, 빈센트씨가 눈썹을 찌푸린다.
빈센트
너, 안경을 벗어봐라.
파우스트는 미소를 지웠다.
화조차 내지 않고 무심하게, 빈센트씨를 흘깃 쳐다본다.
파우스트
거절한다.
빈센트씨는 미간에 주름을 새겼다. 조바심을 숨기지 않고 드라몬드씨에게 묻는다.
빈센트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저 마법사의 이름은?
드라몬드
파우스트입니다.
빈센트
파우스트?
빈센트씨는 놀라서 파우스트를 빤히 쳐다본다.
중앙 국가에 있어 파우스트라는 이름은 특별한 것이었다.
초대 국왕 알렉의 친구이자 그랑벨 왕조 건국에 협력한 마법사의 이름이 파우스트이기 때문이다.
빈센트씨의 눈빛에 희미한 당혹감과 경의가 떠올랐다.
빈센트
파우스트……. 성스러운 마법사라 불리던 파우스트님과 같다.
전설과 같은 보라색 눈동자…….
혹시 그분의 관계자인 것인가?
파우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시선을 돌리는 사이 빈센트씨는 위축된 듯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피한다.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관계자는커녕, 파우스트는 전설의 파우스트 본인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역사적 이야기와는 다르다.
친구인 알렉과는 치명적인 결별을 맞이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친구 알렉…….
그 후손인 빈센트씨의 얼굴을, 파우스트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랜 정적이 지나고, 시선을 돌린다.
파우스트
이다음은 복잡한 내용이 될 것이다.
수업에 방해된다. 나가줘.
드라몬드
파우스트…….
빈센트 전하께 실례이지 않은가.
빈센트
아니, 괜찮다. 그럼, 실례하지.
놀랍도록 순순하게 대답하고 빈센트씨는 솔선수범하여 방을 나섰다.
우리는 당황하며 동쪽의 마법사들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선다.
빈센트씨는 복도를 걸으며 독백을 흘리고 있었다.
열성적인 흥분을 띤 채로 안절부절못하며 턱을 쓰다듬고 있다.
빈센트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거울을 마주댄 듯, 완전히 빼닮았군…….
드라몬드
비, 빈센트 전하?
빈센트
파우스트님이다.
알렉 폐하께서 그리셨다는, 파우스트님과 똑 닮았다.
드라몬드
저 파우스트가 말입니까?
5화 파우스트의 진실
빈센트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리나라 국부의 맹우이신 분일지도 모른다.
드라몬드
아니, 아니, 빈센트님.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건 너무 과대평가입니다.
현자님을 통해 여러 마법사를 알게 되었고, 선한 면도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분명히 얄밉고 음침하고 심술궂은 부류의 마법사입니다. 안심하십시오.
현자
안심하십시오라니……. 그렇지 않아요.
파우스트는 상냥한 사람입니다.
드라몬드
또 그런 말씀을…….
쿡 로빈
정말입니다. 카나리아와 함께 잡담을 나누기도 해요.
드라몬드
저주상과 잡담이라니……. 저주에 걸리면 어쩌려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뜨리면 살해당할 거다!
쿡 로빈
보세요, 그런 태도입니다!
드라몬드
저주상이라니까!? 저주받을 거라고!?
빈센트
그것은 임시적인 모습일 수도 있지. 여러 전승에서 들은 적이 있다.
고결한 성인이나 현자가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둔갑하여 지도자의 진가를 가늠하려 한다고.
가난한 노파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대했더니 실제로는 아름다운 여신님이었다.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다.
빈센트씨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빈센트
성인 파우스트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알렉님께 맡기시고 자취를 감추셨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위기…… 세계의 위기를 맞이하여 다시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몬드
파우스트는 꽤 오래전부터 현자의 마법사였습니다만.
빈센트
함부로 부르는 것은 그만둬라. 만일의 사태가 있을지 모른다.
그분 앞에서 경의를 잊지 마라.
드라몬드씨는 웃으려고 했지만, 빈센트씨가 너무 진지한 끝에 표정을 다잡은 듯했다.
드라몬드
넷, 알겠습니다.
쿡 로빈
후훗, 저 파우스트씨가, 전설의 파우스트님과 동일인물이라니…….
드라몬드
뭘 웃고 있는 거냐, 멍청아! 너도 자세 똑바로 해!
쿡 로빈
넷, 넵!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두 사람을 곁눈질하며 빈센트씨는 진지하게 끄덕였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현자
전설의 파우스트……님은 신용하시나요? 같은 마법사인데도?
빈센트
당연하지. 중앙 국가의 건국을 위해 힘을 실어주신 분이시다.
현자
지금 현자의 마법사들도 그런걸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 힘을 빌려주고 있습니다.
빈센트
………….
현자
선조이신 알렉씨는 마법사들을 친구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전설의 파우스트님도 협조적이셨던 게 아닐까요?
친구로서 대하는 걸 그만두었기 때문에, 파국을 맞이한 걸지도 모르지만.
빈센트씨는 입을 다물었다.
불만스럽게 짜증을 내는 침묵이 아니라 스스로와 세계를 되돌아보는 듯한 사려 깊음이 전해져 오는 침묵이다.
내가 마법사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그도 인간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마법사에게라면, 솔직한 존경이나 경의도 표할 수 있다.
현자
(성스러운 마법사, 건국의 영웅 파우스트님이라…….)
(과거의 파우스트를 흠모하는 중앙 국가 사람들은 많아.)
(파우스트의 정체를 알리면 인간들은 마법사를 신용하기 쉬워지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텐데…….)
(파우스트는, 절대로, 싫어하겠지.)
파우스트는 알렉에게 배신당했다.
인간과 마법사의 결렬 당시, 화형 당할 뻔했던 것이다.
그 후로 계속, 파우스트는 인간들도 중앙 국가도, 원망하고 있다.
파우스트
이봐.
그때, 파우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6화 빈센트의 진의
빈센트씨 일행이 긴장한 듯 자세를 반듯하게 고치고 뒤돌아본다.
빈센트
무슨 일인가.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 것을 벌써 후회하고 있는 듯한 얼굴로, 파우스트는 천천히 안경을 올려 썼다.
파우스트
마법관을 꺼려하던 네가 어째서 집요하게 시찰을 하는 거지?
한 번이라면 변덕이라고 쳐도, 이번이 세 번째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
빈센트
………….
빈센트씨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서려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현자
(마법관을 시찰할 필요……?)
빈센트씨의 침묵에, 파우스트는 비아냥거리며 냉소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비정함을 멸시할 때 그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파우스트
빈센트. 너는 아서의 일가이고, 카인의 옛 주군이다.
오늘은 얌전히 집에 돌려보내 주지.
하지만 우리를 누군가에게 파는 듯한 짓을 해봐라.
그 핏줄이 끊어질 때까지 대대로 저주하겠다.
파우스트의 인품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섬뜩할 정도인, 저주상의 웃는 방식이었다.
빈센트씨가 희미하게 숨을 삼킨다.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존경하는 선조에게 버림받는 것 같은, 불안한 공포…….
의외였다. 이 사람도 누군가가 곁에서 지켜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빈센트
……잘 알았다.
파우스트
흥…….
파우스트는 그림자를 질질 끌며 도서실로 모습을 감췄다.
브로치를 단 귀족
후후……. 어쩜, 멋진 의상이네요.
서쪽 국가는 유행의 최첨단이니까요.
모자를 쓴 귀족
그렇고 말고요. 앞으로는 중앙 국가가 아닌 서쪽 국가의 시대입니다.
마법 과학의 은혜로 대륙 제일의 발전을 이룩한 지금, 서쪽 국가는 가장 풍요롭고 강한 대국입니다.
브로치를 단 귀족
그런데…… 무서운 소문을 들었답니다.
모자를 쓴 귀족
무서운 소문?
브로치를 단 귀족
오즈나 미스라……. 날씨를 조종하고 대지를 뒤흔드는 악명 높은 대마법사들.
그들이 중앙 국가와 손을 잡았다고…….
모자를 쓴 귀족
뭐라고요!? 그 오즈와 미스라가, 어째서 중앙 국가와……!?
설마 우리의 재보와 기술을 빼앗을 셈은…….
???
무슨 일이신지.
모자를 쓴 귀족
당신은…… 바넷 장군……!
브로치를 단 귀족
질 바넷님……! 서쪽 국가에서 가장 평판이 높은 분을 이런 곳에서 뵙게 되다니!
질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모자를 쓴 귀족
바넷 장군. 그 오스와 미스라가 중앙 국가에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질
…………. 예, 사실입니다.
브로치를 단 귀족
어머나! 맙소사……!
모자를 쓴 귀족
중앙 국가는 무슨 생각인 거야!
질
여러분, 진정하시기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중앙 국가에 있는 것은 그들이 현자의 마법사이기 때문입니다.
모자를 쓴 귀족
현자의 마법사…….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어.
브로치를 단 귀족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현자와 함께 <거대한 재앙>을 물리치는 마법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질
예, 그렇습니다.
다음번 <거대한 재앙>과의 전투를 대비하기 위하여…….
오즈와 미스라 일행은 중앙 국가 마법관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법관에 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듣자 하니, 마법사는 현자의 말밖에는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브로치를 단 귀족
그러면 현자님이 계신 한, 오즈나 미스라도 얌전히 있다는 거겠네요. 다행이다…….
하지만, 현자님을 자기 나라에만 붙잡아 두다니 중앙 국가는 너무 교활하네요.
질
아니, 뭐. 중앙의 왕가가 제멋대로 마법관을 설치하고 그들을 환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법관이 반드시 중앙 국가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자를 쓴 귀족
오오! 그럼……!
질
국왕 폐하께서는 현자도, 현자의 마법사도, 우리나라의 관할하에 두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조만간 오즈도 미스라도 이 천공 별궁으로 모셔올 겁니다.
7화 장군의 책략
모자를 쓴 귀족
오오! 역시 바넷 장군!
브로치를 단 귀족
진짜 오즈는, 무서운데…….
모자를 쓴 귀족
현자의 말이라면 듣는다고 하더군.
나는 꼭 보고 싶어! 장군, 기대하고 있겠네!
질
그럼, 실례.
브로치를 단 귀족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장군.
질
………….
브로치를 단 귀족
바넷 장군께서는 통속 소설을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질
그래서, 무슨 일이죠?
브로치를 단 귀족
메그 루모스의 신작, 『애수와 만조의 미트파이』는 보셨나요?
저, 너무 감동해서…….
질
입 다무세요. 내용을 밝히지 마시고.
아직 입수하지 못했거든요. 원정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
브로치를 단 귀족
어머! 꼭 구하세요!
너무 재밌어서…….
질
입 다무시길.
고맙군요. 그럼.
질
내가 깜빡하고 있었군……
메그 루모스의 신작이 나왔다니. 바로 입수하도록.
서쪽 국가의 장교
넵.
질
미트파이가 제목에 있다니, 전작의 조연이었던 메이드 마가렛이 주인공일지도 몰라…….
마가렛의 특기는 미트파이였다. 짝사랑하던 여주인의 약혼자에게 파이를 잘라주는 대목은 명장면이었지.
장교
각하.
질
뭐야, 유고.
유고
진심으로 외람되지만, 충고를 드리겠습니다.
질
알고 있어. 마가렛의 사랑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유고
아닙니다! 방금 전 각하의 말씀입니다.
마법관을 유치한다니……. 만약에 문제가 된다면…….
질
흥. 허황된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유고
각하의 명예에 흠집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태생뿐인 대귀족들과 달리 각하께서는 그 재능으로 이곳까지 올라오신 분.
확실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탕아라고 불리고 계셨지만, 지금은 완전히 딴사람처럼……
질
태생뿐인 대귀족에, 방탕아라. 문제 되는 발언은 네 쪽이군.
유고
죄송합니다…….
질
용서해 주지.
허황된 말은 일부러 한 거다. 술 취한 사람에게 독한 술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지.
우리나라의 대귀족들도 중앙 국가의 정부도 태평하지만, 새로운 국가가 태어난 셈이다.
일찍 손을 써두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에게 멸망당하기 전에, 다시 마왕에게 지배당할 거다.
유고
마왕? 새로운 국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질
마법관 말이다.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
오즈와 미스라를 따르게 하다니…….
소문이 사실이라면 현자라는 자는 일국의 왕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빨리 손을 써둬야 해.
유고
……다른 세계에서 소환된 현자님은 우리를 위해 세계를 지켜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질
그래서 뭐?
유고
나쁜 분인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질
현자가 벌레 한 마리 죽이지 않는 성인이라고 해도, 뒤에 오즈와 미스라를 거느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미가 악한 악당이다.
유고
그럴까요……?
질
불투명하고 위험한 마법관은 통째로 이쪽으로 가져와서 우리가 관리하는 편이 좋아.
이를 위해 이미 물밑에서 교섭을 진행 중이다.
유고
누구에게?
질
너에게 함부로 말할 리가 없잖아.
한번 들으면 죽을 때까지 비밀 엄수다. 무려 국가 기밀이니까.
과연 네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
유고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질문은…….
질
중앙 국가의 국왕 폐하의 동생 되시는 빈센트 전하다.
유고
왜 말씀하시는 겁니까……!?
질
후후. 네 인생에 긴장감을 주고 싶어서.
맛봤다면, 메그 루모스의 신작 좀 구해 와 줘. 최대한 빨리.
유고
아, 알겠습니다!
질
……지금쯤 빈센트 전하께서는 마법관을 시찰하며 몹시 망설이고 있을 거다.
마법관이라는 강력하지만 리스크가 큰 카드를 수중에 둘 것인가, 버릴 것인가.
흥…… 아마도, 버리겠지. 귀찮은 왕자님을 떼어놓을 찬스다.
마법관은 서쪽 국가에 맡겼으니. 당신은 세계 구제에 전념해 주세요, 라며 정무에서 떼어놓고…….
만약 왕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스스로 왕관을 쓰면 되니까.
왕족이라는 건, 무서운 거야. 그런 점이 좋지만 말이야.
8화 서쪽 국가식 환대
빈센트
………….
동쪽의 마법사들과 헤어진 뒤로 빈센트씨는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파우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 시찰에는 무슨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쿡 로빈
현자님. 서쪽의 마법사들은 마법관의 바에 있는 거죠.
현자
앗, 네. 그렇습니다.
쿡 로빈씨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눈앞의 시찰에 집중해야 해.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중앙, 남쪽, 동쪽까지 순조롭게 왔지만, 여기서부터가 고비다.
왜냐하면, 서쪽의 마법사들은 장난을 너무 좋아하니까.
현자
(……그렇다곤 해도, 시찰도 이걸로 세 번째고, 어제 이야기했을 때도 침착했지.)
(그러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아…… 이 방입니다. 잠시 상황을 보고 올게요.
그곳에는 네 명의 빈센트씨가 있었다.
빈센트
뭔가.
빈센트
뭐지.
빈센트
뭐야 뭐야.
빈센트
뭘까.
나는 반사적으로 복도로 돌아갔다.
현자
………….
빈센트
뭔가. 들어가지 않는 건가?
진짜 빈센트씨가, 의아한 듯 묻는다. 나는 뒤돌아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현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뒤로 물러서 주세요.
빈센트
뒤로?
현자
맞아요, 맞아요. 자, 잠시만요.
다시 바를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서쪽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무르
아, 현자님!
클로에
현자님이다!
샤일록
안녕하세요, 현자님.
라스티카
현자님, 어떠셨나요? 피식 웃음이 나셨을까요?
현자
아니, 저…….
라스티카
중앙 국가도, 남쪽 국가도, 동쪽 국가도 모두 진지한 훈련을 하는 것 같았기에.
저희가 발 벗고 나서, 한때의 웃음과 놀라움을 여러분께 제공해 드리려.
현자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 아슬아슬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라스티카
어머. 너무 성인용이었나요?
샤일록
다소 과격한 후반부의 소재는 아직 선보이지 않았습니다만…….
클로에
역시, 혼날 것 같지 않아!?
그치, 현자님.
무르
드라몬드 장관으로 변신하는 편이 더 재밌을까?
현자님, 웃음에 까다로워?
현자
어, 그게……. 그렇죠, 우선…….
여러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쪽의 마법사들
천만에!
현자
하지만 지금, 아직 조금, 빈센트 전하께서는, 놀라움과 웃음은 바라지 않는 느낌이셔서…….
무르
뭘 바라는 것 같아? 철학? 과학? 천문학?
샤일록
속세의 고뇌를 잊게 해줄 미주(美酒)를?
라스티카
멋진 음악은 어떨까요?
클로에
새로운 의상 같은 건 어때?
현자
음…… 그런 류의 것들을, 마법을 사용해서 빈센트 전하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쪽의 마법사들
물론이지!
현자
그럼, 꼭 그 방향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빈센트씨 일행을 돌아봤다.
현자
자, 들어오세요!
무르
<에아뉴・람블>!
쿡 로빈
와아……! 밤하늘의 별자리가 방 한가득 빛나고 있어!
샤일록
<인비벨>
드라몬드
세상에……. 하늘을 나는 열매가 짜여서 리큐르와 함께 글라스 속으로…….
라스티카
<아모레스트・비엣세>
현자
우와……! 정말 근사한 연주예요!
클로에
<스위스피시보・보이팅고크>!
빈센트
………….
클로에
앗…… 으음…….
서쪽의 마법사들의 마법에 모두 잔뜩 들떠 있었다.
빈센트씨 외에는.
9화 마법사의 선물
빈센트
……뭐지, 이건.
클로에의 마법으로 공중에 하늘하늘 떠다니던 천을 빈센트씨가 잡아당긴다.
마법이 풀린 건지 하늘에 떠 있던 선명한 색의 천은 힘없이 빈센트씨의 손에 떨어졌다.
클로에
……그, 그게, 어, 크라바트입니다.
빈센트
보면 안다.
빈센트씨가 홱 노려보는 바람에 클로에는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클로에
죄, 죄송해요…….
라스티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클로에.
봐, 빈센트 전하께서는 화를 내시는 게 아니니까.
클로에
저, 정말……?
라스티카에게 재촉받은 클로에가 살며시 시선을 올린다.
빈센트씨가 심한 태도를 취하지 않기를 빌었다.
클로에는 정말 착한 아이니까.
재봉을 좋아하고, 재봉을 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 그가 재봉 마법을 보여주고 혼나는 것은 너무 끔찍하다.
나는 언제든지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고상하게 집어든 천을 찬찬히 올려다보고, 빈센트씨가 미간을 찌푸린다.
빈센트
마법으로 지금 만든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져 있던 것을 마법으로 꺼낸 것인가?
클로에
아, 그, 그게, 천은 사둔 거예요. 중앙 시장에 멋진 가게가…….
빈센트
마법은 언제 썼지?
클로에
매……, 매듭을 지었을 때입니다!
빈센트
본 적이 없는 매듭 방식이다.
클로에
제가 생각한 매듭 방식이라서요!
빈센트
호오. 세련됐군.
빈센트씨는 장난식으로 자신의 깃에 대 보았다.
그 웃는 모습은, 아서와 닮았다.
나는 기뻐하며 클로에를 돌아봤다.
클로에는 울고 있었다.
깜짝 놀랐는지, 커다란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라스티카가 당황하고 있었다.
라스티카
크, 클로에.
자신의 말에 감격한 서민이 울음을 터뜨리는 데 익숙한 것인지, 빈센트씨는 태연했다.
무르와 샤일록이 눈을 맞추고 조용히 미소 짓는다.
빈센트
알았다. 이건 돌려주지.
클로에
앗, 저기……! 괜찮으시다면, 받아주세요.
정말, 잘 어울리시니까…….
빈센트씨는 수상하다는 듯이 클로에를 노려봤다.
클로에는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래도 눈물을 닦고 빈센트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클로에
마법사가 만든 것이라서, 가지고 싶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저주를 걸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한 마법도, 이상한 장치도, 물론 없습니다!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빈센트
………….
빈센트씨는 시험하듯 클로에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크라바트를 재빨리 깔끔하게 접고 가볍게 들어 올린다.
빈센트
받도록 하지. 너를 신용하겠다.
클로에는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클로에
가……. 감사합니다!
라스티카
잘됐다, 클로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잘 풀린 이야기에 나는 아직도 진의를 의심하고 싶어진다.
클로에가 착한 아이니까.
세련된 매듭 방식이었으니까.
중앙 시장의 가게를 칭찬했으니까.
빈센트씨가 클로에의 호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기뻤다. 나도 빈센트씨에게 감사를 전하려고 했다.
그것을 가로막고, 그는 라스티카에게 말을 걸었다.
빈센트
라스티카 펠치?
라스티카
예.
라스티카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빈센트씨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위에서 아래까지 관찰했다.
빈센트
<거대한 재앙> 전투의 희생자를 대신하여 소환된 음악가라고…….
라스티카
그렇습니다, 빈센트 전하.
부디, 기억해 주십시오.
10화 라스티카의 과거
빈센트
이쪽이야말로.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나?
라스티카
물론입니다.
빈센트
펠치란, 그 멸망한 펠치 가문인가?
한때 서쪽에서 부귀영화를 자랑하던, 서쪽 국가 왕가 이상의 대부호였던 대귀족인…….
빈센트씨의 질문에 라스티카의 옆에서 클로에가 숨을 삼켰다.
뚫어지게 라스티카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라스티카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라스티카
글쎄요. 송구스럽게도 잊어버렸습니다.
빈센트
……그런가.
라스티카
당신의 이름은, 빈센트 그랑벨?
빈센트
……그렇다.
라스티카
근사한 이름이네요.
빈센트씨는 대답하지 않고, 두 손을 뒤로 깍지꼈다.
빈센트
라스티카. 당신의 신변을 돌보는 이는?
라스티카
클로에에게 항상 신세를 지고 있답니다.
정말 눈치가 빠른 아이거든요.
빈센트
일손은 충분한가. 부족하다면 종자를 붙여주지.
샤일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르가 휘파람을 불었다. 놀라울 정도로 후한 대우였다.
무르
왜 라스티카에게? 현자님에게도 종자가 없는데?
빈센트
쿡 로빈이 있잖나.
쿡 로빈
네!? 저는, 그, 본업은 서기관인데요…….
샤일록
기묘한 일이군요. 서쪽의 마법사는 기묘한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고압적이었던 당신의 태도가 이제 와서 부드러워진 이유와 무언가 관계가 있습니까?
입 다물고 있으라는 듯, 빈센트씨가 샤일록을 노려봤다.
샤일록은 파이프를 물고 가볍게 눈썹을 추켜올린다.
빈센트씨는 뭔가 말하려다 문득 할 말을 잊은 듯한 얼굴을 했다.
마치 샤일록의 미소에 넋을 잃은 것 같았다.
민망한 듯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문다.
분명치 않은 태도였지만, 어쩌면 탁월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샤일록에게 반하지 않고 그와 정면으로 말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샤일록
이런, 유감.
무르
샤일록은 따분하겠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라스티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째서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건가요?
혹시…….
빈센트
………….
라스티카
당신이 나의 신부…….
빈센트
신부?
클로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진정해, 라스티카!
마도구인 새장을 출현시킨 라스티카를 클로에가 허둥지둥 말렸다.
라스티카는 신부를 찾고 있다.
그 때문에, 신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새장에 가두는 버릇이 있었다.
아저씨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빈센트
잘 모르겠지만, 이제 됐다. 물러가도록 하지.
빈센트씨는 그렇게 말하며 라스티카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라스티카도 정중하게 답례한다.
그가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묘한 위화감이 남는다.
클로에는 불안한 듯 라스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행한 처지였던 클로에는 라스티카에게 구원받고, 그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라스티카는 클로에의 스승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라스티카의 과거를 모른다.
그가 왜, 신부를 찾는지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