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화 해후는 갑작스럽게
무르
……실례. 실례, 거기 계신 귀공자.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
이런, 실례…….
…………!
혹시, 당신은 그 위대한…….
무르
쉿.
너무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
미안해요.
아아, 꿈만 같아요…….
전설의 위인을 만나다니.
무르
양광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
지금은 빈털터리 학자입니다.
그럼 이만.
???
기다려 주십시오, 무…… 천하의 귀재.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당신이, 오늘 밤은 무슨 용건으로?
무르
후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요즘은 전운이 감도는 탓인지, 안정적인 부자가 없거든요.
???
설마.
당신의 재능에, 서쪽 왕가 분들은 재물을 아끼지 않을 테지요.
무르
그게 어째 최근 인색해서 말이죠.
옥좌에 앉은 엉덩이가 바뀐 탓일까.
그런데, 사파이어 성의 공주님을 아십니까?
???
사파이어 성의 공주님……?
무르
네. 지금은 왕가보다 부자라는 소문이 자자한 대귀족의 사랑스러운 딸을 만나러 온 겁니다.
듣자 하니 뛰어난 음악가라더군요.
온실 속 화초 같은 예술가 공주님은, 분명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겁니다.
???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네요.
어째서인가요?
무르
예술가란, 가시를 사랑하는 법이니까요.
저 밤하늘을 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극적인 것은, 저 달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손에 닿지 않죠…….
???
……손에 닿지 않는다…….
무르
그 반면, 나에게는 손이 닿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극적인 남자.
아무래도, 파멸과 항상 등을 맞대고 살아가니까요.
예술가 공주님은 제게 완전히 반하겠죠.
반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말 타기 놀이의 말 역할이라도 좋아요.
어떻게 해서든, 연구 자금이 필요해.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에게 무릎을 꿇고, 구두 끝에 키스하겠습니다.
???
위대하신 분,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답니다.
하지만 대현자라 불리던 당신도, 틀릴 때가 있는 것이군요.
무르
무슨 뜻이죠?
???
분명 연구에 너무 몰두하신 나머지 바깥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하신 것이겠지요.
사파이어 성의 대귀족의 아이는, 외동딸이 아니라 외동아들.
이름은 라스티카 펠치.
라스티카
부디, 기억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여…….
이런……. 부디 딱 한 번만.
작은 목소리로, 성함을 불러보게 해 주십시오.
……무르 하트님.
당신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르
그대가 라스티카…….
라스티카
네.
무르
………….
아름다운 귀공자, 걱정 마세요.
나는 마법사. 당신이 원하는 대로, 여자의 몸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당신 취향으로.
라스티카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저도 마법사랍니다.
게다가, 저에게는 약혼자가 있습니다.
무르
정부라도 상관없습니다만.
말 쪽이 취향이신가요?
라스티카
아…….
마침 그녀가 이쪽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제 미래의 신부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2화 그들은, 지금
클로에
……티카…….
……라스티카!
라스티카
………….
클로에
드디어 눈 떴네!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 잠들다니…….
라스티카
클로에…….
클로에
안녕, 라스티카.
아직 꿈속이야?
무슨 꿈을 꾸고 있었어?
라스티카
……그녀의…….
클로에
응……?
라스티카
……흐아암…….
클로에
앗,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하품을 해서.
라스티카
후후…….
안녕, 클로에.
클로에
있지, 무슨 꿈꾸고 있었어?
라스티카
글쎄, 잊어버렸어!
하지만, 분명히 행복한 꿈이었을 거야.
기분이 무척 좋거든.
클로에
그러면 다행이지만…….
라스티카
눈앞에는 네가 있으니 말이야.
오늘도 잘 부탁해, 클로에.
오늘도 근사한 하루가 되기를.
클로에
잘 부탁해, 라스티카.
아…… 혹시 이걸 적다가 잠든 거야?
라스티카
아아, 맞아.
현자님께서 맡겨주신, 서쪽의 현자의 서…….
빨리 마법관으로 돌아가서 현자님과 모두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클로에
응…… 그렇지.
있지, 라스티카. 분명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
우리뿐만 아니라, 다들…….
라스티카
물론이지.
각자의 사명을 다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믿자.
클로에
응……. 믿을게.
라스티카
교향곡의 지휘자들…….
다른 국가에서 현자의 서를 맡은 동료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어떤 경치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적고 있을까.
현자님을 위해서.
파우스트
………….
하아…….
오늘도 부상자는 없군.
소녀
동생의 상처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례를 가져올게요!
피가로
사례는 필요 없어.
또 놀러 오렴. 이 아이들의 말동무가 되어줄래?
소녀
네!
친구들 데리고 또 올게요!
피가로
언제든지 오렴.
후후. 귀여워라.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그 녀석이구나.
레녹스
네.
그 남자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피가로
아이고…….
……오늘도 방문함.
브래들리
……망할, 농담 아니라고!
오늘 날짜 옆에 네놈 제삿날이라고 써넣을 맘 없다고!
카인
………….
니콜라스, 드디어…….
너를 부추긴 녀석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바…….
3화 마법관의 존속
몇 달 전──.
드라몬드
그럼, 현자님.
준비되셨습니까?
현자
네.
드라몬드
정말이시죠!?
현자
어…….
아마, 그, 분명, 70% 정도 괜찮아요…….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드라몬드씨에, 나는 우물쭈물 입을 다물어 간다.
드라몬드씨는 안쓰러울 정도로 비참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라몬드
현자님…… 큭.
소극적인 대답은 곤란합니다!
마법관의 존속이 걸려 있단 말입니다!
쿡 로빈
드라몬드님!
빈센트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드라몬드
아아……! 벌써 오셨다니!
마을을 멸망시킬 사신이 습격해 온 것마냥 드라몬드씨는 펄쩍 뛰었다.
그 기분은 조금 알 것 같다.
중앙 국가 국왕의 동생인 빈센트씨는 지독한 마법사 혐오자로 유명했다.
오늘은 그 빈센트씨가 세 번째로 마법관을 시찰하는 날이었다.
왜 세 번째인가 하면…….
드라몬드
첫 번째 시찰 때는 전원 마녀.
두 번째 시찰 때는 전원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평범한 모습이겠지요!?
나는 힘껏 미소 지어 보였다.
현자
……아마…….
드라몬드
현자님! 아마는 곤란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란 말입니다!
현자
그치만…….
드라몬드
그치만, 뭡니까!?
현자
그치만, 빈센트 전하께서 전혀 우호적이지 않으신걸요.
그래서 마법사들도 놀려주려고 하는 거라구요.
드라몬드
쉿……! 현자님, 들리고 말 겁니다!
현자
조금쯤, 듣게 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네 번째 시찰은 하고 싶지 않으시겠죠.
드라몬드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돌고 돌아 빈센트 전하께 꾸중을 듣는 것은 아서 전하십니다.
아서 전하를 위해서, 여기서는 부디 참아주십시오.
현자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즈를 비롯해 모두 협조적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몬드
정말이십니까?
현자
뭐, 네……. 저번에 주신 왕궁 납품 과자도 굉장히 좋아했고요…….
드라몬드
아아, 다행이다!
계절 선물은 빼놓지 않고 해야겠군요.
또 여러분들께 보내드리지요.
현자
감사합니다.
드라몬드
앗, 빈센트 전하께서 이쪽을 보고 계십니다.
무슨 용건이 있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자님. 실례하겠습니다.
현자
알겠습니다.
저는 여기 있으면 될까요?
드라몬드
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허둥지둥 드라몬드씨가 떠나갔다.
나는 차렷 자세 그대로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아서
현자님.
현자
왁……!
갑자기 아서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펄쩍 뛰었다.
깜짝 놀라 내 어깨를 보니 선명한 푸른색 나비가 앉아 있다.
그 나비에게서 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자
아서…….
아서
죄송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상황을 보러 와 버렸습니다.
파닥파닥 나비가 날개를 떨었다.
빈센트씨를 맞이하고 있는 드라몬드씨 일행은 나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4화 오랜만의 재회
아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현자님답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저희를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
현자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까 드라몬드씨가 마법관의 존속에 관련된 거라고…….
아서
괜찮습니다. 숙부님도 진심으로 마법관을 손에 넣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이웃 국가와의 정치적 관계가 있어서…….
현자
5개국 평화 회의에서도 말씀하셨죠.
나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오비시우스라는 마법사의 흉계에 방해받았던 5개국 평화 회의…….
그것이 무사히 개최된 날의 일.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으로 세계가 엉망진창이 된 이후 처음으로 국제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것이 5개국 평화 회의다.
하지만 오비시우스라는 마법사에 의해 그랑벨 성이 점령당할 뻔했다.
현자의 마법사들이 무사히 해결해 주었지만 성에 있던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기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모른다.
자연재해 등으로 각국 대표의 도착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개최할 수 있었다.
그때 논쟁거리가 된 것은 중앙 국가가 관리하는 마법관…….
즉, 마법관에 사는 나와 현자의 마법사들이었다고 한다.
드라몬드
현자님.
드라몬드씨가 불러서 나는 정신을 바싹 차렸다.
아서가 작게 속삭이며 날갯짓을 한다.
아서
그러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중앙 국가 마법사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현자
알겠습니다.
나비 아서가 떠나간 것과 교환하듯이 빈센트씨가 이쪽으로 왔다.
쭉 뻗은 등, 위압적인 표정, 박력 있는 태도…….
한눈에 위대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예전의 나라면 휙 시선을 피하고 재빨리 지나가도록 움츠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마법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익숙해진 지금,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현자
(무서워 보인다고 해도 사람이니까……. 번개를 떨어뜨리는 것도, 건물을 부수는 것도, 유령인 것도 아니고…….)
(이 사람도, 나쁜 마법사가 있다면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면성실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빈센트
오랜만이군.
마법사를 이끄는 현자, 아키라여.
현자
오랜만입니다, 빈센트씨.
……빈센트님?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빈센트
……경칭은 불필요하다.
너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존재.
이 세계의 예의를 강요해도 소용없다.
게다가, 아서를 존칭 없이 부르고 있겠지.
그가 나보다 지위가 높다.
현자
그런가요?
빈센트
아서가 제1왕위계승자다.
아서를 존칭 없이 부른다면, 나에게 존칭을 붙여서는 안 된다.
5화 언젠가, 친구가
현자
하지만 저, 드라몬드씨를 드라몬드씨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빈센트씨는 말하기 어려운 것을 보듯 드라몬드씨를 돌아보았다.
드라몬드씨는 또렷하고 진지한 눈빛을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드라몬드
현자님.
저를 부디 드라몬드라고 불러주십시오.
현자
하지만 쿡 로빈씨도…….
쿡 로빈
아아아아아아!!
쿡 로빈이면 됩니다! 쿡이라고 하셔도 될 정도입니다!
현자
(이미 호칭이 익숙해져 버렸는데. 음…….)
모두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현자
지금과 똑같이 부탁드립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서에게 존칭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빈센트
하지만…….
현자
아서와는 친구입니다.
그렇지만 연상인 당신을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은 왠지 건방진 것 같아서…….
언젠가 친구가 된다면, 이름만으로 부르게 해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빈센트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빈센트
흥…….
하지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내 제안을 받아 주었다.
빈센트
알겠다.
현자
그런데 빈센트씨.
그쪽 분들도 함께 시찰하시는 건가요……?
빈센트씨는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과학병단일 것이다.
대충 보기만 해도 50명 가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마법관에 들여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빈센트
나를 경호하는 자들이다.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가?
드라몬드
빈센트 전하.
너무 많은 인원을 데리고 다니시면 마법사들을 자극하게 될 겁니다.
빈센트
호오.
나에게 대항하겠다는 건가?
빈센트씨는 위협하듯 나를 노려보았다.
미안함을 느끼며, 나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현자
대항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신나서 날뛰는 사람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빈센트
………….
현자
사람이 많으면 축제 같다고 기뻐하거든요.
빈센트씨는 불만스러운 듯, 병사의 절반에게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빈센트
이걸로 됐나.
현자
네. 감사합니다.
빈센트
그럼, 안내를 받지.
현자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는 마법관을 걷기 시작한다.
복도 한구석에서 나를 응원하듯 카나리아씨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중앙 국가 국왕의 남동생, 빈센트씨의 제3회 마법관 시찰이 시작되었다.
6화 마법사와 정령
우선 처음으로, 중앙 국가 마법사들의 훈련을 시찰하기로 했다.
중앙의 마법사들은 마법관 근처 야외 훈련장의 숲에 모여 있었다.
조금 전 나비의 모습으로 만났던 아서도 훈련복을 입고 섞여 있다.
아서 옆에는 중앙 국가 기사였던 카인도 있었다.
아서
현자님. 숙부님.
잘 오셨습니다.
카인
빈센트 전하.
수고스레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거대한 재앙>의 상처 탓에, 카인에게는 빈센트씨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응대였다.
아서가 눈짓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빈센트씨가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서로를 지탱하는 두 사람은, 깊은 신뢰로 맺어진 이상적인 주종이다.
빈센트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평소대로 훈련을 하도록.
빈센트씨의 말에 아서와 카인은 가볍게 인사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마도구인 지팡이를 든 오즈와 그를 올려다보는 리케의 모습이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산들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든다.
망설임 없는 올곧은 눈빛으로, 리케는 오즈에게 말했다.
리케
오즈. 이야기를 계속해 주세요.
마법사와 정령의 이야기를.
오즈는 고개를 끄덕이듯 눈을 내리깔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그림자를 눈빛으로 쫓듯이, 바람결이 스치는 정적의 숲을 멀찍이 바라본다.
오즈
세계의 이치는, 정령의 이치다.
정령은 마법사를 좋아하고 마법사에 의해 사역된다.
리케
정령…….
우리의 불가사의한 힘은, 신이 내려주신 것이 아닌가요?
오즈
신이라고 부르는 자도 있었다.
호칭은 아무래도 좋다.
오즈의 무심한 말에, 리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케는 신의 사도라고 불리며, 폐쇄적인 교단에서 자라왔다.
호칭은 아무래도 좋다고 하니 동요하는 것은 당연했다.
빈센트씨나 드라몬드씨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의외였지만, 그들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세계를.
자신들을 위협하는지, 자신들을 보호하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힘을.
오즈
정령들은 땅마다 모이고, 땅마다 성질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각각의 질서에 따르고 있다.
카인
땅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중앙 국가의 바람의 정령은 서쪽 국가의 바람의 정령과 다르다는 건가?
오즈
그렇다.
정확히는, 같은 국가라도 다른 땅에 가면 성질이 조금 다르다.
인간들의 구조와 비슷하다.
비슷한 성질끼리 모이거나, 땅에 감화되어 비슷한 성질이 된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의 스스로를 떠올렸다.
내 경우에는 지역 커뮤니티가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는 비슷한 느낌이 든다.
개인이 커뮤니티에 감화되거나, 기질이나 취향이 비슷한 커뮤니티에 섞이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룹은 도시 단위, 직장이나 학교 단위로 존재하고 있겠지.
카인
만약,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 다른 땅의 정령들을 섞으면 어떻게 되지?
7화 정령과 신
오즈
약한 것이 강한 것에 감화된다.
통상적으로, 수가 많은 것이 수가 적은 것에 영향을 준다.
이윽고, 땅의 기질에 물든다.
아서
살아가는 장소를 바꾼 인간이 땅에 맞는 기질로, 변화하는 듯한 것…….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죠.
오즈
그렇다.
정령은 감화되기 쉽다.
정령은 자신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사역하려 하는 자를 좋아한다.
현자
그것이 마법사……?
오즈
마법사이자 마법 생물이다.
불가사의한 힘이 깃든 도구이기도 하다.
마력이 강한 자는 더욱 정령을 미치게 하는 자다.
더욱 정령에게 사랑받는다, 라고 표현해도 좋다.
정령에게 영향을 주는 자다.
리케
그러니까…….
리케는 자신에게 묻듯이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오즈에게 물었다.
리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라고 불리는 오즈는, 정령에게 그 무엇보다도 사랑받고 있는 건가요?
오즈
그 표현을 선택한다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광란시키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리케
정령……의 다른 이름이 신이라고 할 경우, 오즈가 가장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되나요?
오즈
그렇다.
리케는 눈을 부릅뜨고 오즈를 응시했다.
격렬한 반발과 분노와 경외와 동경이 한순간에 폭발해 리케를 날려버린 듯했다.
비틀거리는 리케의 등을 아서가 지탱한다.
아서
……괜찮나, 리케?
리케
네, 저…….
……좋다, 나쁘다를 떠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를 계속해 주세요…….
오즈
………….
리케
기다려 주세요.
역시, 먼저 말해두겠습니다.
저는,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오즈
무엇을?
리케
당신이 신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다니…….
오즈
그렇다면, 그걸로 됐다.
리케
…………읏.
리케는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다.
뒤로 나자빠져 쓰러질 뻔한 것을 아서가 지탱한다.
천적을 앞에 둔 동물이 파르르 털을 곤두세우듯이, 리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빈센트씨 일행이 없었다면 오즈를 때릴 법한 박력이다.
리케는 눈물 맺힌 눈으로 오즈를 노려보았다.
리케
당신은 무책임합니다.
오즈는 무관심한 듯, 리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차분한 눈빛 속에는 곤혹과 연민이 있다.
오즈는 조금, 리케를 좋아하는 것이다.
리케뿐만 아니라, 그가 키운 아서는 물론 카인에게도 애착을 품고 있다.
이 마법관에서 함께 살며 무수한 임무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였다.
아서
리케. 오즈님은 땅에 따라 정령의 기질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어.
리케의 신과 오즈님의 신은, 또 별개의 것일지도 몰라.
리케
정말인가요……?
8화 리케의 곤혹
오즈
신이라고 불리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정령들에게는 왕이 있다.
카인
중앙 국가의 국왕 폐하나 서쪽 국가의 국왕 폐하처럼?
오즈
보다 무수히 존재한다.
장이 강한 땅에는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場の強い土地 기운이 강하다 이런 느낌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아서
동물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이라고 어렸던 저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즈
그렇다. 장이 안정되고 무리가 커지면 왕이 탄생한다.
카인
그 녀석은 뭘 하지?
오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장의 질서가 어지럽혀지지 않는 한.
리케
질서가 어지럽혀진다니요?
오즈
혼돈이다.
질서는 붕괴하고, 정상적인 사태가 아니게 된다.
예기치 못한 불행과 액운이 닥친다.
정령의 왕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사악한 저주가 장에 침입했을 때, 질서를 잃고 혼돈이 태어난다.
혼돈은 만물을 오염시키지.
장에 닿은 짐승, 짐승에 닿은 초목은, 혼란스러워하고 이상해져 간다.
현자
오염…….
깨끗한 강에 독이 섞여버린 것 같은 느낌일까요?
오즈
한층 더 심한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그림자를 잃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 계속해서 초대된다.
그러한 땅은, 이상하게 아름답거나, 이상하게 추하다.
땅에 사는 사람이나 나무나 짐승도.
마법으로 정화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질서를 되찾을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카인
이상하게 아름다운 것…….
예를 들어 히스클리프는? 그 녀석 용모 단정하잖아?
그런 건 좋지 않은 것인가?
오즈
히스클리프는 다르다.
감탄의 숨을 내뱉게 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숨을 삼키고,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이상한 아름다움이다.
너도 보면 알 것이다.
카인
그렇군…….
알겠다, 고마워.
그런데 당신, 말주변이 없는데 설명이 굉장히 이해하기 쉬웠어.
연습해 준 건가?
따뜻한 감사를 담아 카인이 미소 짓는다.
오즈는 고개를 저으며 아서를 바라보았다.
오즈
아서가 어렸을 때 몇 번이고 물어봤었다.
카인
아아, 그렇군.
리케
……저는 아직, 도저히, 당신의 말이 옳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리케는 이마를 누르며 흥분을 식히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리케
아무래도 좋다니…….
아무래도 좋을 리가 없잖아요.
세계를 움직이는, 신비한 힘이.
분명 올바른 답이 있을 겁니다.
저는 당신이 아니라 사제님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리케의 문답을 바라보며 빈센트씨가 드라몬드씨에게 물었다.
빈센트
……사제란?
드라몬드
리케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종말 교단에서 키워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거기서는, 마법사는 신의 사도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빈센트
……그렇군.
아서
리케.
그때 아서가 리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몸을 숙였다.
부러질 듯 가냘픈 리케의 어깨를 지탱하며 아서가 미소 짓는다.
아서
네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해.
세계에 불가사의한 영향을 미치는 신비한 힘의 정체를 나도 알고 싶어.
리케
아서님…….
리케와 시선을 맞추며 아서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왕이라 불렸던 마법사의 무거운 마음의 문마저 열어낸, 솔직하고 올곧은 말들.
봄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밝고 다정하다.
아서
이 세계는 불가사의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나도 리케와 함께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9화 좋아한다는 마음
리케는 초록색 눈동자에 감격을 머금고 아서를 바라보았다.
리케는 색다른 방식으로 자라왔다.
세계에 접촉할 때마다, 그가 믿어왔던 것들이 조금씩 흔들려 간다.
리케에게는, 낯선 세계에 실수로 빠져 들어가 헤매고 있는 듯한 공포일 것이다.
그러한 불안을 느낄 때 아서가 곁에 다가와 주어서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서는 부드럽게 리케의 손바닥을 꽉 잡는다.
아서
앞으로 리케와 함께 세계에 대해 배워가는 나날 속에서, 나는 리케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어.
리케
제가 좋아하는 것을요?
아서
응.
옳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
올바름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하면,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도, 취향이 다를 뿐인 친구가 될 수 있어.
리케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한다…….
아서
오즈님이 말씀하신 건, 그런 거야.
정령의 왕이든, 신이든, 좋아하는 대로 부르면 돼.
그것은, 리케의 신념이나 정의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니야.
전해지고 있을까?
리케
………….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아서
다행이다.
리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서는 미소 지었다.
아서
이 세계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입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워.
올바른 것이 정해져 있고 항상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모두 안심이고, 간단하지.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잘 되지는 않는다.
모두들 항상, 흔들리고 있어.
리케
……아서님도요?
아서
물론이지. 북쪽 국가에 있었을 때, 중앙 국가로 돌아왔을 때, 나의 세계는 몇 번이고 다시 칠해졌어.
오해도 많이 있었고, 나의 상식이 뒤집히는 일은, 한가득 있었어.
리케
무서웠나요……?
……잘못 알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나요……?
아서
그래. 무서웠고, 부끄러웠다.
의지할 곳이 없어져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어.
새로운 것을 접할 때 누구나 무지한 것은 당연한 거야.
분명 리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올 거야.
그때, 떠올려 줘.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리케
네…… 알겠습니다.
불안하기도 하지만요…….
조금, 안심되었습니다.
이 한심한 마음은 모두 똑같은 것이군요.
그렇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서
그렇지. 특히 중앙 국가는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니까.
자신의 올바름만으로 대화하려다 보면,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나고 말 거야.
리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서는 희미하게 시선을 돌렸다.
빈센트씨를 보고 있다.
빈센트씨는 아서와 같은 푸른색 눈동자를 탁하게 가늘게 떴다.
빈센트
………….
아서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으로 이야기하자.
리케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 것의 이야기도 하자.
분명, 다르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사이좋을 테니까.
리케
……네, 아서님.
감사합니다.
카인
……하아. 긴장했다.
빈센트 전하께서는 다음 시찰로 향하신 건가.
아서
그런 것 같아.
카인
오늘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리케랑 오즈는?
10화 왕자의 음모
아서
리케가 지쳐 있는 모습이라 방에 데려가려고 했더니, 오즈님께서 맡아주시겠다고 하셨어.
카인
그렇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아서
기쁜 일이야.
오즈님과 보낸 옛날이 떠오르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카인. 귀를 기울여 줘.
나는 지금 음모를 꾸미고 있어.
카인
음모?
아서
숙부님께서 집요하게 마법관 시찰을 실시하고 계시는 데는, 서쪽 국가 정부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카인
서쪽 국가?
아서
그래. 숙부님께서는 마법과학의 연구를 통해 서쪽 국가와 친분을 쌓으셨으니까.
나와 정권 다툼을 할 때는 서쪽 국가를 뒤에 업고 계실 거야.
카인
……엄청나게 험악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아서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어.
물론 숙부님과는 화해하고, 서로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힘이 센 동물과 놀 때는 조심하기도 해야 하니까.
어릴 적 북쪽 대지에서 배운 거야.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서로 알지 못하면 뜻밖의 부상을 당한다.
함께 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성질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거기다 신뢰할 필요가 있어.
숙부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행동이 숙부님에게는 공격으로 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도 보이게 됐어.
카인
확실히, 그 말이 맞다.
즉, 마법사를 싫어하는 빈센트님께서 아서님을 정적으로 삼았을 경우…….
서쪽 국가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서쪽 국가에서 태어난 마법 과학은, 인간을 속일 일도 없지.
아서
그 말이 맞아.
숙부님과 서쪽 국가 정부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신뢰 관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야. 이유는 대략 알고 있어.
카인
5개국 평화 회의의…….
아서
그래. 나의 기사는 현명하구나.
카인
이제 기사가 아니다.
아서
자학은 카인에게 어울리지 않아.
나는 너를 다시, 기사단장으로 만들 거야. 그게 내 음모다.
숙부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들 마법사를 좋아해 주실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숙부님도 이야기를 들어주셨지.
만약 이 시찰이 잘 풀린다면, 용기를 내서 조를 생각이야.
카인
조른다고?
아서
그래. 마법사도 국가의 요직에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시작은 이래.
세계의 이변에 쫓기듯 대응하느라, 마법관에서는 <거대한 재앙> 전투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변에 대응할 수 있는, 마법사를 포함한 조사단을 결성해 주었으면 한다.
카인
조사단…….
아서
조사단이 결성되고, 사람들의 신용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의 이름을 이렇게 바꾼다.
마법 기사단.
기사단장은 너야, 카인.
카인
아서…….
안 된다, 그런 건.
나를 위해서라면 멈춰다오. 네 입장이 나빠진다.
각국 정부는 모두 마법사들에게 조직의 힘을 주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고.
아서
카인을 위해서가 아니야. 나를 위한 거야.
나의 이상 세계를 위해.
숙부님의 말씀대로 마법사는 불가사의한 힘을 사용하지.
봉인된 서적도 읽을 수 있고, 하늘을 날아 성에 침입할 수도 있어. 암살도 간단히 할 수 있고.
하지만, 카인.
너나 레녹스보다도 키가 더 큰 젊은이도 있겠지?
그들은 그 강인한 힘을 휘둘러서 어린아이를 다치게 할 수도 있어.
하지만, 보통은 그런 일 하지 않겠지, 라는 믿음으로 사회는 성립되고 있다.
우리들만 그들 사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이상해.
국민을 지켜온 영웅의 명예가 박탈된 채로 있는 것은, 이상해.
나는 이 국가의 왕자로서, 이 국가가 너에게서 빼앗은 것을, 너의 손에 돌려주고 싶은 거야.
카인
……아서…….
아서
오늘의 시찰은 그 첫걸음이다!
잘되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격려로 하이파이브 해줘.
카인
……알겠다. 함께 노력하자.
나도 네 명예를 지키고 싶다.
오즈나 리케나……. 다른 마법사들의 명예도.
다른 인간들의 명예도.
아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