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화 | 2화 | 3화 | 4화 |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 10화 |
1화
어느 날 저녁.
샤일록의 바는 저녁 식사 전 카페 타임을 즐기는 마법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현자
어? 이 바는 원래부터 마법관에 있었던 게 아니었나요?
무르
아니야! 샤일록이 마음대로 만들었어!
미틸, 리케
마음대로……?
샤일록
조금 듣기 거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렇죠.
매년 멀리서 일을 하러 오는 곳이니까요. 편안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어서.
클로에
그렇구나……. 예전의 마법관은 지금처럼 북적대지 않았지.
한적한, 그냥 숙박 시설 같은 느낌이었어.
라스티카
오락거리가 적은 곳에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다니, 샤일록 답네.
현자
그런데 마법관은 중앙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인 거죠?
허가 없이 손대도 괜찮은 걸까요…….
미틸
드라몬드씨……는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빈센트씨가 알면 혼나지 않을까요?
무르
우리, 본인 방의 인테리어도 마법으로 마음대로 바꾸고 있잖아. 비슷한 거 아니야?
젊은 마법사들
그럴지도?
현자
(다들 자유롭네…….)
샤일록
이 바는 본래, 제가 저를 위해 만든 것.
누군가를 향해 영업할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샤일록이 윤이 나도록 닦은 잔을 소리 없이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긴 속눈썹을 들어 올리고, 이쪽을 향한 눈동자가 가늘게 뜨인다.
샤일록
이번에 당신이 와서 모두가 마법관에서 살게 된 뒤로, 몰라볼 정도로 활기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매일같이 여기서 술을 만들고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것이 매일의 즐거움 중 하나랍니다.
이 장소는 베넷의 술집과도 다른 맛이 있어서 제 마음에 드니까요.
현자
샤일록…….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 주고 계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저는 모두 같이 살 수 있어서 기뻤지만,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교류의 장소로서, 이 바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아늑하니까요!
클로에
알지~! 게다가 살고 있는 건물 안에 바가 있다니 사치스러워.
저절로 들르고 싶어지게 된다구.
미틸
네! 복도를 지나갈 때, 영업하고 있나? 하면서 바를 들여다보는 건 두근거리고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저희도, 샤일록씨는 환영해 주니까요.
리케
카운터에 앉아서 예쁘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죠.
샤일록
기쁜 말씀을 해주시네요.
당신들이 예의 바른 손님이기 때문이죠.
무르
샤일록, 기분 좋네!
샤일록
제가 만든 공간이 마음에 든다고, 여기에 있고 싶다고, 들르고 싶다고 하는 것은 주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겠죠.
카운터도, 선반이며 의자도, 장식도, 제가 하나하나 골라서 들여온 것이고요…….
아아, 자. 이 화병은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입니다.
팔에 걸친 스카프를 누르며 샤일록이 카운터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놓여 있던 것은, 꽃 한 송이가 꽂힌 작은 꽃병이었다.
현자
세련된 디자인이네요! 심플하면서도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느낌으로…….
하나밖에 없는 것인가요?
라스티카
꽂혀 있는 꽃도 아름답네.
품위 있고 가련해서 이 바에 딱 어울려.
샤일록
후후. 당신들도 마음에 드셨다니 무척 기쁩니다.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가 가끔씩 먼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해줄 때, 조금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 든다.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이나 그가 고집하는 것을 알고, 나도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때, 온화한 분위기를 깨듯이 바의 벽이 날아갔다.
화려한 파괴음과 함께 오웬, 미스라, 브래들리가 엉겨 붙어서 들이닥친다.
클로에, 미틸, 리케
!?
현자
어어!?
라스티카
안녕, 세 사람. 홀을 거치지 않고 밖에서 직접 들어온 걸까?
샤일록
벽에 큰 구멍이…….
바람이 기분 좋은 날씨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조금, 바람이 너무 잘 통하네요.
무르
오즈도 있네! 안녕─!
오즈
………….
저녁노을로 물든 하늘에, 빗자루를 사용하지 않고 떠 있는 오즈의 모습이 보인다.
바 중앙에는 북쪽 마법사 세 명이, 토템폴처럼 겹쳐져 있었다.
오웬
쳇…….
미스라
쳇, 이 아니죠.
당신이 가져온 마법진 덕분에 오즈가 저희를 날려버리게 됐잖아요.
오웬
내 탓으로 돌리지 마.
네가 진을 잘못 써서 그렇지.
브래들리
하아……. 이제 그만 됐어!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체질에 안 맞는다.
이제 곧 해가 질 테니까, 오늘은 이만 끝내자고.
오웬
빌어먹을…….
너희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마.
샤일록
오웬……. 그쯤 해두는 게 어떨까요?
숨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오웬
시끄러워.
<쿠레・메미니>!
오웬이 날카롭게 주문을 외우자 바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살기가 실린 얼음 칼날이 날아다니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번개가 빛난다.
미스라
<아르심>
라스티카
<아모레스트・비엣세>
클로에, 미틸
으악!?
재빨리 미스라가 미틸을, 라스티카가 클로에를 끌어당겼다.
나와 리케의 주위에도 부드럽게 빛나는 투명한 막이 나타난다.
리케
오즈의 마법의 기척……. 오즈의 결계입니다!
오즈
<복스노크>
오웬
……윽.
날아간 오웬은 바 카운터에 등을 강하게 부딪혔다.
2화
순간, 주변을 더듬었으나 그 꽃병을 움켜쥔다.
클로에, 라스티카
앗!
현자
잠시만요, 그건……!
오웬
<쿠레・메미니>
꽃병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얼음을 휘감았다.
꽃과 함께 얼어붙은 그것이 오즈에게로 던져진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의 번개가 얼어붙은 꽃병을 무심하게 꿰뚫었다.
터지는 도자기와 얼음이 산산이 흩어져 하늘에 흩날린다.
현자
아…….
샤일록
<인비벨>
그 안에서, 샤일록은 우아하게 파이프를 피웠다.
향수를 뿌린 듯 농밀하고 달콤한 향기가 우리를 감싼다.
오웬
읏……!
잠깐, 뭐야?
샤일록
끝입니다. 계속하시겠다면, 부디 밖에서.
오즈, 당신도요.
오즈
………….
샤일록이 조용히 오즈를 일별한다.
오즈는 희미하게 눈썹을 찌푸리고, 시선을 뿌리치듯 몸을 돌린다.
그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리케
정말이지!
적어도 벽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돌아가면 좋을 텐데.
오웬
………….
미틸
저, 미스라씨…….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치신 곳은 없나요?
미스라
당연하죠.
당신이야말로 멍하니 있지 말고 자기 자신만큼은 스스로 지켜주세요.
내가 무슨 목적으로 수행을 해줬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미틸
……!
네…… 그렇죠.
순간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더 훈련하겠습니다!
브래들리
나 참, 재난이었네.
얼른 철수할까.
라스티카
벌써 가버리는 거야?
황급히 바로 들어오길래 그렇게나 목이 말랐던 건가 했는데.
클로에
그런 느낌도 아닌 것 같아, 라스티카. 하지만 벽이 날아간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야.
오웬도 괜찮아?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오웬
하아…….
흥이 꺾인 얼굴로 오웬은 손에 든 트렁크를 내려놓았다.
불쾌한 듯 숨을 쉬고, 거칠게 카운터석에 걸터앉는다.
오웬
샤일록. 네가 방해한 탓에 기분이 최악이야.
뭐라도 달콤한 음료수나 내놔.
샤일록
네, 알겠습니다.
아아…… 병이 깨져 버렸다. 이게 마지막 한 잔이네요.
현자
(어라……? 화는 안 난 건가?)
(행동도 표정도 평소같이 보이는데…….)
샤일록
자, 오웬. 당신을 위한 한 잔입니다.
샤일록이 내민 것은, 표면에 꽃잎이 흩뿌려진 새빨간 칵테일.
석류를 짜낸 듯 생생하고 넋을 잃을 만큼 요염하다.
오웬
늦잖아.
오웬은 한마디 불평을 하고는 잔을 받아 들었다.
가느다란 목이 진홍색 내용물을 쭉 들이킨다.
오웬
……!
순간, 퉁명스러웠던 흰 얼굴에 확 밝은 빛이 맴돌았다.
오웬
……나쁘지 않네.
뭐, 맛있잖아.
샤일록
그거 다행이네요.
대금은 괜찮습니다. 그 대신 당분간 이곳에 오지 말아주세요.
오웬
하?
오웬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위 마법사들에게도 동요하는 듯한 술렁임이 퍼져나간다.
샤일록
저는 이 바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 공간의 질서를 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절도를 지키지 않는 손님을 환영할 수는 없으니까요.
품위 있게, 몹시 상냥하게, 그러나 단호한 태도로, 샤일록은 그렇게 고했다.
무르
아─아.
저질렀네!
현자
저건, 즉…….
(사실상, 출입금지라는 거……!?)
바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며칠 뒤.
나는 미틸과 오즈와 함께 명웅의 거리에 방문했다.
차분한 거리 풍경을 사쿠쨩도 내 어깨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
현자
바를 부순 것에 대한 사과로 과자를 사러……라니, 오즈가 말을 꺼내는 것은 드문 일이네요.
오즈
사죄한다고 하니 쌍둥이가 시끄럽게 떠들었다.
사람을 날려버릴 때는 건물이 아닌 숲으로 날려보내라, 라고도. 일리가 있다.
미틸
그, 그런가요……?
오즈
쌍둥이니까. 사죄를 핑계 삼아 이 거리의 제과점에서 선물을 사게 하는 것이 목적이겠지.
오즈는 그렇게 말하지만, 목소리나 표정에서는 싫어하는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현자
(오즈도 샤일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바를 부순 것을 조금 신경 쓰고 있는 걸까.)
그건 그렇고, 오늘은 미틸이 함께해줘서 다행이에요.
전에 이 거리에 방문한 뒤로 종종 가개를 개척하고 있다고 했죠.
미틸
네! 현자님은 물론이고, 오즈님도 안내해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과점이나 잡화점도 많으니까 산책하는 게 즐거워서…… 어라?
지나가던 카페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미틸과 함께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현자
샤일록?
그의 정면에는, 둥근 안경을 쓴 품위 있어 보이는 신사가 앉아 있었다.
막 헤어지는 참이었는 듯 샤일록에게 손을 흔들고 가게를 나선다.
오즈
저 남자는 마법사군.
현자
샤일록의 지인일까요.
이 거리에는 단골 가게가 몇 군데 있다고 했고…… 앗.
매장 안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는 샤일록과 눈이 마주쳤다.
느긋하게 미소 짓는 그가, 손짓을 한다.
3화
샤일록
조금 전의 그는 제 친구입니다.
그는 서쪽 국가에서 색다른 라운지를 경영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거기에 출점하지 않겠냐고 상의해 오더군요.
현자
라운지에 출점, 이요……?
샤일록의 권유로 우리도 휴식을 취할 겸 차를 마시기로 했다.
향긋한 홍차 향이 가득한 가게 안에서, 칵테일을 섞듯 샤일록이 받침접시를 돌린다.
샤일록
이름하여 『첫눈에 반하는 라운지』. 비정기적으로 영업하는 대여 라운지입니다.
가게의 테마는 매번 다릅니다. 학교 같은 인테리어를 준비한다거나, 점원과 손님이 연인이라는 설정이거나…….
점원이 주인이고, 손님이 강아지라는 것도 있었지요.
오즈
굳이 바에 가서 강아지 흉내를?
미틸
연인이라는 것도……. 부끄럽지 않나요?
샤일록
받아들여 버리면 즐거운 법입니다.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굴고, 손을 내밀거나, 목줄을 차려입거나…….
연인과 이야기하듯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서로 맞닿고.
미틸
힉…….
현자
그거…… 소위 말하는 컨셉 바 같은 느낌인가요?
샤일록
어머, 알고 계시는 건가요?
현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 세계에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메이드 복장을 한 점원이 있거나, 의상이나 설정에 공을 들인 개성적인 가게가 꽤 인기 있었던 것 같아서요.
같은 취미나 기호를 가진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고 할까…… 아마 그런 거겠죠?
샤일록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의 라운지는 그러한 것들 중에서도 이름난 유명한 가게로, 마치 하룻밤의 덧없는 사랑처럼, 한때의 만남과 이별, 비일상적인 것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인기가 높답니다.
미틸
손님을 상대로 점원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느낌인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을 것 같아요. 떨리기는 하지만…….
오즈
아이들이 드나들 곳은 아닌 것 같다만?
샤일록
노려보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답니다.
그때그때 테마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무슨 일로 이 거리에?
현자
아, 그렇죠.
실은 사죄의 물건을 구하러…….
오즈
……아아.
이것을.
샤일록
사죄…….
오즈가, 저에게?
미틸
얼마 전 바의 벽을 부순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즈
처음에 공격을 시작한 것은 오웬 일행이지만…….
미틸
그래도 스노우님과 화이트님께서 말씀하셔서 선물을 찾으러 온 거예요.
저희도 도와드렸습니다!
오즈
……과자와 술이 들어 있다. 받아라.
내밀어진 꾸러미를 보고 샤일록은 눈을 깜빡인다.
하지만 살며시 아래에서 손을 받쳐 들고, 힘을 빼듯 웃었다.
샤일록
……당신의 선물이라니, 귀중한 것이네요.
감사히 받아두겠습니다.
마법관으로 돌아와서 오즈와 미틸과 헤어진 후.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샤일록과 함께 바에 들르자, 어둠 속에 인영이 있었다.
오웬
안녕, 늦었네.
현자
오웬…….
카운터 구석에 꺾인 끝자리.
불빛이 잘 닿지 않는 그곳에 걸터앉아,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다.
샤일록
……무슨 용건이신가요?
당분간 오지 말아달라고, 저번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오웬
용건이고 뭐고, 손님으로 온 것 말고 뭐가 있겠어.
달콤한 음료수라도 만들어 와.
샤일록
당신은 지금 제 손님이 아닙니다.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샤일록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간다.
손가락을 휘두르자, 둥실 떠오른 병과 과일이 선반과 캐비닛에 수납되어 갔다.
오웬
그렇게 말하면 더 오고 싶어지는데.
바에서 난동을 부린 건 나뿐만이 아니잖아.
비품을 부수는 것도 그래, 이제 막 시작된 일도 아니고.
왜 나만 탓하고 따돌리는 거야?
샤일록
………….
오웬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게 토라져 있는 거야, 샤일록.
샤일록
……바나 술집은, 많은 사람이 모여 교류를 즐기는 장소입니다.
저도 딱딱한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들의 행동을 모두 좋게 여길 수는 없답니다.
오웬 쪽은 보지 않은 채 샤일록이 한숨을 내쉬었다.
개수대로 손을 뻗어 잔에 남은 물방울 자국을 확인하며 말을 이어간다.
샤일록
애초에 저는, 어떤 고객이라도 다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입장부터 거절하는 경우도 있고, 질서가 흐트러질 법할 때는 가게 문을 닫거나 중재하여 밖으로 안내합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갑자기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죠.
그 덕분에, 새로 들여온 참이었던 꽃병이 깨져버렸습니다.
오웬
하, 그런 걸로? 고작 꽃병 하나로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야?
너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사과의 뜻으로, 너는 못할 법한 대단한 마법이라도 보여줄까.
샤일록
후후…….
오웬
……왜 웃는 거야?
샤일록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일부러 불도 닿지 않는 카운터 구석에서 저를 기다려 주신 거죠?
게다가 달콤한 음료수를 만들어 달라고까지 하시고는.
고상하게 미소를 지으며, 샤일록이 살짝 몸을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톡, 오웬의 코끝을 건드는 듯한 행동을 한다.
장난치는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나무라는 듯이.
샤일록
귀여운 사람.
오웬
………….
오웬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냉동고를 연 것처럼 싸늘하게 공기가 차가워져 간다.
내 품 속 사쿠쨩의 털이 쭈뼛 솟았다.
현자
저, 저기……!
샤일록
아아…… 현자님.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짓지 마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샤일록이 팔을 벌리고 나를 불러들인다.
4화
부르는 대로 다가가자 등을 토닥토닥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의 손에는 마도구 파이프가 쥐어져 있다.
긴장감이 맴도는 침묵에, 등줄기가 꼿꼿해진다.
샤일록
형태를 가진 것은 언젠가 부서집니다.
그 꽃병은 특별히 비싼 것도, 애착이 깃든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제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가 제 가게고, 당신이 제 손님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그것을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오웬
……뭐야 그게.
너의 긍지라는 거야?
샤일록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바꿔 말하자면 미의식일까요.
오웬
잘도 말하네. 서쪽의 마법사 따위는, 약해 빠졌으면서 태평하고, 자기 욕망에만 관심이 있지. 머릿속은 꽃밭인 미친 것들이야.
그런 녀석들에게도 긍지가 있다고?
현자
오웬,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샤일록
괜찮습니다.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비웃음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때로는 돌이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겠죠? 나와 당신이 중시하는 것은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웬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네. 그런 것보다, 빨리 뭐라도 만들어.
저번에 마신, 갓 짜낸 생혈 같은 달콤하고 붉은 칵테일 같은 거 말야.
샤일록
정말이지, 입만 살아있는 분…….
샤일록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무언가 묻고 싶다는 듯 눈동자에 장난기 어린 빛을 띄운다.
샤일록
……오웬.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제게 사과를 할 마음은 있는 거죠?
오웬
그런 말을 했던가?
샤일록
네.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세요.
저번에 만들어드린 붉은 칵테일……. 그것은 리큐어 병이 깨져 버려 그것이 마지막 한 잔이었습니다.
그 리큐어는 조금 특수한 것이랍니다. 일반 가게에서는 구할 수 없지만, 특별히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샤일록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샤일록
오웬. 어느 라운지에서, 저와 함께 카페 바 영업을 하지 않겠습니까?
후일.
미틸
샤일록씨, 선반의 잔을 닦아두었습니다!
현자
다음에는 접시를 치울게요!
샤일록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손이 빠르시네요.
오즈, 오웬
………….
샤일록의 친구가 운영하는 서쪽 국가의 컨셉 바, 『첫눈에 반하는 라운지』.
그곳에 출점하게 된 우리는, 다 같이 준비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오웬이 받은 출입 금지령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라운지를 향한 준비 시간 동안에는 바에 출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현자
(샤일록과 오웬이 걱정돼서 나도 돕겠다고 순간적으로 자원해버렸지만…….)
(설마 오즈와 미틸까지 와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오웬
정말로. 왜 이렇게 된 거지?
현자
우왓!? 어, 어째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걸…….
혹시 마음을 읽으셨나요?
오웬
그런 짓 안 해도 얼굴 보면 알아.
저기, 돌아가도 돼? 나 바쁜데.
샤일록
임무나 의뢰 일정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스노우님과 화이트님께는 의논을 마쳤으니 걱정 마세요.
거기에 감시역을 겸하여 오즈님까지 파견해 주셨으니…….
스노우, 화이트
좋아~! 오웬쨩, 빌려주마!
스노우
봉사 정신과 사교성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테지.
게다가 얼마 전에 화려하게 바를 부수었다면서.
화이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웬이라지만, 미스라와 브래들리도 공범이다.
두 사람의 처벌은 우리에게 맡기려무나.
스노우
그렇고말고. 하지만 오웬을 돌보는 것은 그대 혼자 감당하기 힘들겠지.
겸사겸사 오즈도 감시역으로 동행시켜주마. 얼마 전에는 고 녀석도 거침없이 날뛰었으니 말이다.
스노우, 화이트
그러면, 두 사람을 잘 부탁해~!
오웬
망할, 그 자식들.
오즈
선물한 과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현자
(세계가 넓다고는 하지만, 『겸사겸사』 오즈를 빌려줄 수 있는 건, 스노우와 화이트 정도겠지…….)
미틸
샤일록씨의 가게를 또 도울 수 있다니 기대돼요.
라운지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샤일록
저야말로요.
미틸은 이전에 바를 도와주었을 때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니까요.
게다가 다채로운 사람들로 구성된 쪽을 더 기뻐하시겠죠.
현자
맞다…… 라운지는 매번 다른 테마로 영업하는 거였죠.
그건 오너씨가 결정하는 건가요?
샤일록
아니요, 이번에는 제게 일임해 주신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검토 중이지만 기본적인 카페 바 형식은 무너뜨리지 않을 예정이니, 우선은 인테리어 의논을 하도록 하죠.
예를 들어……. 오웬, 무슨 색을 좋아하나요?
오웬
네 피 색.
샤일록
어머, 흉흉해라.
오즈님은?
오즈
특별히 취향은 없다만…….
네 눈동자의 붉은색은, 와인 같다고 생각한다.
샤일록
오즈님은 와인을 좋아하시니까요.
그러면, 미틸은?
미틸
어─, 뭘까요…….
딱 떠오르는 건, 초록색이나…….
현자
아, 좋네요. 차분한 느낌이 들어서 저도 좋아해요.
샤일록
그렇군요…….
<인비벨>
샤일록이 후 하고 연기를 내뿜자, 광택 있는 다크그린이 시선을 사로잡는 앤티크한 소파가 나타났다.
짙은 붉은색을 기조로 한 마법관의 바에는 무척 새로운 색감이다.
5화
현자
왠지 신선하네요! 샤일록의 가게는 붉은 기가 도는 색감으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오즈
좋은 색이다.
미틸
네, 정말로요! 어른스럽고 멋져요.
샤일록
감사합니다.
어떤가요, 오웬. 마음껏 누우세요.
오웬
누우라고……? 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뒹굴거릴 리가 없잖아.
그보다,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한테 접객을 시키다니, 손님이 전부 돌아가지 못하게 돼도 몰라.
샤일록
그렇게 얘기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라운지 영업이 잘 되면 당신이 마시고 싶어 했던 리큐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에 의한, 달콤한 욕망이나 기쁨이야말로 리큐어의 원료가 되는 것이니까요.
샤일록이 말한 리큐어 제조법은 지극히 독특했다.
라운지를 방문한 손님이 흥분이나 고양을 느끼면, 오너가 애용하는 마도구로부터 꿀이 추출된다. 손님의 감정이나 행복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같은 맛은 두 번 다시는 없다.
그것이 리큐어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오즈
손님이 기뻐할수록, 맛에 깊이가 더해지는 것인가?
샤일록
그렇습니다.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경우에는 단맛도 적고 싱거운 맛으로.
충분히 두근대주셨다면, 꿀은 농후해지고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화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고급 리큐어를 맛보면 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고동치는 기분이 드는 듯하여…….
『사랑의 맛』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더군요.
미틸
사, 사랑의 맛…….
어떤 느낌일까…….
현자
그보다, 그걸 평범하게 바에서 내주시고 계셨던 건가요!?
샤일록
네, 가끔요. 몸에 해롭지는 않으니 악센트로.
지금으로서는 제가 과거에 출점했을 때 나온 리큐어가 역대 최고의 작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오웬의 행동에 따라서는 지난번에 맛본 것보다 훨씬 더 감미롭고 진한 것을 입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웬
그런 걸로 내가 낚일 줄 알고…….
오즈
오웬, 소파에 누워라.
오웬
뭐야, 생각난 것처럼.
뭐…… 촉감이나 디자인은 그렇게 나쁘진 않지만.
오웬은 마지못해 하면서도 소파에 허리를 내렸다.
심드렁하게 팔걸이에 기대는 그의 모습은, 눈길을 끌 만큼 고귀하고 오만하고 매력적이다.
현자
와…… 오웬, 엄청나게 그림이 되네요.
굉장히 품위 있어 보여요.
미틸
마치 오웬씨를 위해 만들어진 소파 같아요…….
샤일록
아아, 생각했던 대로입니다.
당신이 등받이에 팔을 두르고 기대어 다리를 꼬았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형태를 골랐습니다.
색감만은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소파를 가게에 두도록 하죠.
아울러 의상도 준비해야겠네요.
오웬
……너, 나로 인형놀이라도 할 셈이야?
샤일록
설마요. 접객이라고는 해도 당신에게 어려운 일을 부탁하지는 않습니다.
영혼이 부서진 무르가 제 가게에서 뒹굴어도 그림이 되는 카우치를 놓은 것처럼, 거기에 계셔 주시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당신은 단연, 무르보다도 예절이 좋지만요.
오웬
하……. 너네 길고양이와 함께 묶지 마.
오웬이 싸늘하게 웃었다. 버릇없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아름다운 가죽에 신발바닥을 문지른다.
오웬
있잖아, 샤일록. 한번 따끔하게 당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너는 나보다 훨씬 약해. 나는 언제든지 그 꽃병처럼 간단하고 허무하게, 너를 돌로 만들어버릴 수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불온한 기색에 우리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카운터 의자에 웅크리고 있던 사쿠쨩이 재빨리 달려와 나를 지키듯 가슴을 편다.
옆에 있던 미틸도 내 반 발짝 앞으로 나와 꾹 입술을 다물고 있다.
오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라.
또 잔해 더미에 깔리고 싶은가?
오웬
시끄러워라. 오즈도 이 녀석에게 얕잡아 보이고 있어.
천하의 마왕님이, 서쪽 마법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샤일록
오해입니다, 오웬. 저는 당신들을 업신여긴 적 따위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오웬
시끄럽다고 하잖아, 거짓말쟁이.
무슨 소리?
샤일록
곤란하네요. 거짓말은 아닙니다만…….
오웬
우선 내 이야기를 들어. 이건 너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야.
무르도 클로에도 라스티카도, 언제나 운 좋게, 어쩌다 보니, 죽지 않았을 뿐.
그걸 한 번 제대로 똑똑히 주입시켜줄까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몸소 알려주는 거지.
아아, 하지만 돌이 되면, 가르쳐줄 수 없나.
샤일록
……알겠습니다. 한번,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이야기할까요.
오즈. 베넷의 술집까지 저희를 데려다주시겠어요?
미틸
네……?
현자
하지만, 샤일록…….
샤일록
괜찮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위한 수다를 떠는 것뿐이니까요.
오즈
……30분 후에는 데려오겠다.
<복스노크>
오웬
………….
샤일록
자, 앉으세요.
제가 드리는 드링크는 오랜만이죠? 아주 달콤한 초콜릿 칵테일 같은 건 어떠신지…….
오웬
<쿠레・메미니>
샤일록
……읏!
오웬
자진해서 나와 단둘이 있는다니, 정말 바보 같은 녀석.
샤일록
……크, 윽…….
오웬…….
오웬
잘 어울려, 그 목줄이랑 사슬.
자, 개처럼 끌어당겨줄게. 꼴사납게 바닥을 기어봐.
샤일록
윽, 후후…….
루비 같은, 붉은 쇠사슬……. 무척이나, 아름다워요…….
저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건가요?
오웬
………….
샤일록
공포와 흥분이 뒤섞여 열기가 욱신대는 자극적인 놀이입니다만.
지금은 당신과 느긋하게 수다를 떨고 싶으니…….
이거 푸세요.
오웬
………….
흥분하지 마, 역겨워…….
샤일록
콜록…….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오웬
칭찬 아니야.
일부러 장소를 옮겼다는 건, 여기를 죽을 곳으로 정한 건 줄 알았는데.
6화
샤일록
다칠 예정은 없습니다.
라운지 영업을 앞두고 있으니까요.
오웬
……너 말이야.
정말로 나를 카페 바에서 일하게 할 생각이야?
샤일록
네. 당신은 분명 잘 해낼 겁니다.
당신은 자주 심술궂은 말씀을 하시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파고드는 말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저번에도 조금 이야기했지만, 당신과 저는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웬
하? 어디가.
샤일록
서로 개인주의적인 부분이.
오웬뿐만 아니라 북쪽의 마법사들은 모두 강하기에 고고한 존재입니다만.
당신의 깊이 파고드는 존재 방식에는 특히 미학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좋아하고, 타인과의 대화도 좋아하죠. 대화 방식은 개성적일지언정.
오웬
………….
샤일록
저는 사람이나 주위의 경치가 완전히 달라져도, 태연자약하게 혼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가게를 열고, 사람을 초대하게 되었지요.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사람을 좋아합니다. 제가 아닌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것도.
오웬
우습네……. 무리 지으려는 건 약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나는 너희와는 달라. 내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괴롭히고 슬픈 표정을 짓게 하는 게 유쾌하기 때문이야.
공포와 실의와 악의가 나에게 힘이 돼. 개미를 짓밟듯이, 마음을 좀먹고 쓸모없게 만드는 건 기분이 좋아.
샤일록
그런 생각도 당신다워서 멋지네요.
당신에게밖에 없는, 당신만의 감성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저를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요.
오웬
나는 너에게 호감을 받고 싶지 않아.
나를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는데.
샤일록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본래, 좋아한답니다.
당신처럼 변덕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분을.
오웬
……나를 쫓아냈으면서?
샤일록
그건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도 가끔은 고집을 부리고 싶어지거든요.
다름 아닌, 저만의 미의식……. 긍지를 위해서.
오웬
………….
샤일록
리큐어를 구하면 다시 한번 당신에게 그 칵테일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화해하도록 하죠.
오웬
화해…….
하하…… 뭐야. 나이도 많으면서, 어린애 같은 말투.
샤일록
사랑스러운가요?
오웬
뻔뻔하네. 너, 나보다 나이 많잖아.
그보다, 초콜릿 음료는?
샤일록
그랬죠. 말을 많이 했으니 목이 말랐겠네요.
깔끔한 걸로 할까요?
오웬
단 게 좋아.
목에 들러붙을 정도로 묵직하고 걸쭉한 녀석으로.
샤일록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마중 오시기 전에 서둘러 만들도록 하죠.
오웬
흥…….
서쪽 녀석들은 이상한 녀석들뿐이고, 엮이면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안 좋아해.
하지만 너는 아직, 말이 통할지도.
*調子が狂う
샤일록
그거 다행이네요. 화해 예정은 받아주시는 건가요?
오웬
……뭐, 됐어. 이번만큼은 어울려줄게.
오즈
……시간이 됐다.
<복스노크>
샤일록
어머, 벌써 30분이 지났나요?
오웬
콜록콜록!
단숨에 마셨더니 사레들렸어…….
미틸
샤일록씨, 오웬씨!
현자
두 분 다, 어서 오세요……!
눈부신 빛에 감싸여 돌아온 두 사람은 맥이 빠질 정도로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였다.
일단 다툰 기색은 없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즈
살아 있기는 하군.
샤일록
네, 보시다시피.
마중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래서 그…… 화해는 하셨나요?
샤일록
아직이지만 예정은 세웠습니다. 라운지에도 와주시기로 했어요.
그렇죠, 오웬?
오웬
뭐, 나는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니까.
콜록…….
가시 돋친 기운은 어느 정도 옅어지고, 그들답게 침착함을 되찾고 있다.
낯선 사람들끼리 식사를 함께한 후처럼, 서로만이 아는 것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현자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나는 상상이 안 되지만.)
자세히 묻기도 멋없어 보여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느낀 변화는 아마도, 좋은 것처럼 생각되었으니까.
분주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드디어 영업 당일.
라운지에 도착하자 샤일록의 오랜 팬이라는 오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이해주었다.
오너
샤일록, 잘 와주었어……!
어젯밤은 기대돼서 잠을 설쳤다고.
샤일록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테리어도 전해드린 대로 아름답게 다듬어 주셨군요.
오너
너를 위한 거니까. 오늘은 기대할게!
샤일록
네. 당신도 부디, 즐겨 주세요.
그러면 바로 오늘 라운지의 멤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현자
안녕하세요, 현자인 아키라입니다.
사쿠리피큠
………….
미틸
미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즈
오즈다.
오너
아아, 잘 부탁해…… 아니, 오즈!? 설마, 그 오즈인가!?
아니, 이 관록……. 분명히 그렇겠지!
샤일록
참고로 미틸은 치렛타의 아들이랍니다.
제 바에서 만난 적이 있죠?
오너
뭐라고!? 대마녀 치렛타의 아들에,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던 마법사에, 이세계에서 오신 현자님까지…….
만세, 만세! 오늘은 우리 라운지에 길이길이 남을 역사적인 하루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샤일록. 저기 있는 그는?
오웬
크림 케이크, 초콜릿 마카롱에 과일…….
흐음, 그저 그렇잖아.
샤일록
실례, 소개가 늦었습니다.
그는 오웬. 이미 오늘의 배역에 들어갔답니다.
오너
오웬……!? 설마, 오웬까지 이 라운지에!?
그 무서운 북쪽 마법사인…….
오웬
그런데?
오너
히이익! 어떻게 이럴 수가!!
그, 그래서? 이 멋진 멤버로, 오늘은 대체 어떤 테마를……!?
너희의 옷차림으로 짐작해 보자면, 하인처럼 보이는데…….
7화
샤일록
그냥 하인이 아니랍니다.
다름 아닌 현자님께서 조언해 주셨거든요. 그렇죠?
현자
ㄴ, 네!
바로, 이번 주제는…….
샤일록
그렇군요…….
현자님의 세계에서는, 메이드로 분장해 접객을 하는 것이 인기였다니.
현자
바로 떠오르는 건 역시 그렇네요.
메이드씨가 오믈렛에 소스로 낙서를 그려주거나, 요리가 맛있어지는 주문을 함께 부르거나 하는 것 같아요.
제 지식도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샤일록
아니요, 흥미롭습니다. 저는 봉사계니까, 그러한 컨셉이 더 손에 익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약간 신선미가 부족하군요.
현자
그렇죠…… 이 세계에서는 하인분이 시중을 들어주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주문도, 다들 진짜 마법사니까요.
게다가, 역시 오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음…….
샤일록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내 눈짓을 받은 샤일록이 흐르듯 눈을 감고는, 느긋하게 뜬다.
나른한 분위기를 휘감은 눈동자는, 여느 때의 그와는 조금 다르다.
샤일록
오늘은 왠지, 기분이 내키지 않네요.
저에게 봉사를 받고 싶으시다면, 주인님이 저를 그럴 기분이 들게 해주세요.
오너
오오……!
현자
……이런 느낌의, 『제멋대로에, 변덕스러운 하인』입니다!
오너
좋아! 정말 좋구나!
아름다운 하인에게 꼼짝 못하고 리드당하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오즈
있나……?
미틸
있을까요……?
오웬
아…… 크림이 바닥에 흘렀네.
뭐 됐어. 마법으로 청소할 생각도 안 들고, 그냥 놔두자.
오너
변덕스럽다…….
그렇게 잔뜩 흘려놓고 그대로 놔두다니…….
오즈
오웬…….
오웬
오물오물…….
질척질척…….
오즈
오웬.
옷에 크림이 묻는다.
오웬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거잖아.
미틸
하지만 이러다가는 가게가 크림투성이가 되어 버리겠어요.
아─, 또 흘렸다!
오즈
……이 상태로 괜찮은 건가.
샤일록
걱정하지 마세요. 있는 것만으로 그림이 되는 분이니까요.
무엇보다, 이곳은 첫눈에 반하는 라운지.
다른 곳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그 나름의 대접이 필요합니다.
개성적인 언행이며 태도에도, 분명히 기뻐해주실 테지요…….
그때 문 너머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오늘 샤일록이 출점한다는데!?
???
어떤 테마의 가게일까?
아아, 기다릴 수 없어……!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문 너머로 전해진다.
개점 시간이 다가오면서 로비에 손님들이 찾아온 모양이다.
각자 맡은 자리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고, 미틸과 함께 끼익 하고 문을 연다.
사쿠쨩도 카운터 구석의 의자 위에서 얌전하게 웅크렸다.
미틸
크, 크흠.
여러분, 『첫눈에 반하는 라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자
오늘은 제멋대로에 변덕스러운 하인들이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그들의 눈길을 끄는 행동을, 부디 즐겨 주세요!
샤일록
어머…… 주인님. 벌써 돌아가시는 건가요?
플로어의 소란 따위 전혀 모른다는 듯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운터석에 걸터앉아 고개를 젖히고 파이프를 피우는 샤일록이,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샤일록
조금 더, 느긋하게 있다 가시면 좋았을 텐데.
검은 옷의 손님
아아~……!
그런 느낌이구나……!
감긴 머리의 손님
어쩜 이렇게 매력적이고 나른한 모습으로……!
아아, 두근거려!
샤일록
후후,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으니, 자리로 안내해 드리죠.
손님들
고마워~!
미틸
거기 아가씨는 이쪽으로!
현자
주인님은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긴 머리의 손님
네에─!
……으앗!
오즈
………….
긴 머리의 손님
미안해. 너무 신나서 껑충 뛰어가다가 부딪혀 버렸네…….
경비원? 아니, 그 복장은, 여기 점원……?
오즈
호위다.
얼른 자리에 앉도록.
계속해서 찾아오는 손님은, 베넷의 술집 단골손님과 오너의 지인, 라운지의 팬 등 다양했다.
플로어가 활기를 띠어가는 와중에, 중앙의 소파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오웬이 근처 자리의 부부에게 말을 건다.
오웬
너, 그 봉투는 선물?
테이블 위에 있는 과자에 더해도 되지?
드레스를 입은 부인
앗, 잠시만…….
수트를 입은 신사
아앗─!
봉투가 엉망진창으로……!
샤일록
오웬. '너'가 아니라 '부인'이지요.
그리고 봉투를 열 때는 적어도 한마디를,
열어도 되냐고 여쭤봐야죠.
소파의 등에 몸을 기댄 샤일록이 쟁반에 담긴 과일을 포크에 꽂는다.
아, 하고 입을 벌린 오웬의 바로 앞에서 휙, 포크를 당긴다.
샤일록
예의 바르게 할 수 있나요?
할 수 있다면 과일에 크림을 듬뿍 묻혀 드릴게요.
오웬
지시는 안 받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샤일록
그걸로 충분합니다.
당신답게, 특등석에 군림하여 가게를 북돋아 주세요.
단, 손님을 부르는 호칭만은 잊지 않도록.
오웬
네, 네.
오웬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샤일록은 넘칠 듯한 크림에 과일을 푹 담근다.
방자한 아기 새처럼 입만 벌린 오웬이, 그것을 베어 물었다.
오웬
냠.
샤일록
착한 아이.
생긋 미소 지은 샤일록이 오웬의 입가에 남은 크림을 손끝으로 닦아준다.
샤일록
주인님 여러분.
저희 가게의 마스코트 고양이는 마음 내키는 대로, 가끔은 장난도 친답니다.
손을 물리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시길…….
8화
오웬
저기, 그것도 내놔.
오웬이 슬며시 샤일록의 손을 끌어당긴다.
손가락에 남은 크림을, 낼름 핥아먹었다.
샤일록
보세요. 이런 식으로, 먹히고 싶지 않다면.
모자를 쓴 손님
좀 좋은데…….
목걸이를 한 손님
응, 좋다…….
라운지 전체가 숨을 죽이고, 흥분으로 들썩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에 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난다.
미틸
저건…….
카운터 안쪽에서 지켜보는 오너의 곁에 앤티크한 사이펀 메이커 같은 것이 보인다.
거기서 유리병 받침 접시로, 붉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현자
저게, 소문으로 들었던 마도구……?
오즈
그런 것 같군.
저 물방울이 리큐어의 원료다.
오웬
흐응…….
지루하지만, 이렇게 마음대로 구는 것만으로 꿀이 쌓인다면 나쁘지 않나.
얼른 저 병을, 달콤함으로 꽉 채워 줘야지.
샤일록
네, 잘 부탁드립니다.
검은 옷의 손님
저기, 샤일록.
손이 비어 있다면, 술 한 잔 더 따라줄래?
샤일록
글쎄요……. 공교롭게도 지금은 기분이 별로 내키지 않는군요.
그럴 기분이 들도록, 보상을 받아도 될까요?
검은 옷의 손님
예, 예를 들면……?
샤일록
달콤하게 애태우듯, 저를 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따라준 술을, 어떻게 해도 마시고 싶다고…….
당신의 말로, 말씀해 주세요.
검은 옷의 손님
말할게, 말하고말고!
내 말로, 반드시 돌아서게 만들어 보일게!
감긴 머리의 손님
샤일록 최고!
사랑해~!
샤일록
저도 그렇답니다, 아가씨.
그리고 저는 쌉싸름한 와인과 짭짤한 맛이 나는 견과류로, 잠시 숨을 돌리고 싶은 기분입니다만.
감긴 머리의 손님
가져와도 괜찮아~!
현자
저쪽 테이블, 분위기가 달아올랐네.
금발의 손님
어머, 현자님 아니야?
그쪽은 미틸쨩이네.
짧은 머리의 손님
베넷의 술집에서 몇 번인가 봤어.
오늘은 여기서 도와주고 있는 거야?
현자
그렇습니다.
저희는 바가 아니라 카페 담당이지만요.
미틸
즐기실 수 있도록 열심히 서비스할 테니, 푹 쉬다 가세요!
금발의 손님
그러면, 당신도 테마에 따른 접객을 해주는 거야?
짧은 머리의 손님
좋다, 꼭 보고 싶은데!
미틸
네? 어…….
제멋대로에 변덕스럽게…….
……모, 몰라요. 저한테 지시하지 말아주실래요?
와앗, 죄송합니다!
손님들
……흐, 귀여워~!
금발의 손님
더 보고 싶어!
다시 한번 해봐!
짧은 머리의 손님
있지, 현자님도!
현자, 미틸
네에……!?
피어싱을 한 손님
여어. 너 오웬이라고 한다며?
샤일록이랑은 무슨 사이야?
의상이 멋지네. 그 케이크 맛있어?
오웬
시끄러, 함부로 말 걸지 마.
피어싱을 한 손님
뭐, 뭐라고……!?
오웬
말 걸지 말라고 말하고 있잖아.
그래도 그 잔은 받아줄게.
자, 건배.
피어싱을 한 손님
멋대로 내 드링크를 마시고 있어…….
어쩜 이렇게 횡포할 수가! 큐웅.
샤일록
죄송합니다, 장난꾸러기라서요.
한 잔 더 만들어 드릴게요.
오웬. 다 마신 것은 당신이니까, 대신 레시피를 생각해 드리는 게 어떨까요?
오웬
그럼 쇼콜라 리큐어에, 녹인 마시멜로를 넣는 건 어때?
크림이랑 꿀이랑 카라멜도, 산더미처럼 토핑하고.
피어싱을 한 손님
뭐야, 그 덧셈밖에 없는 칵테일은!?
그렇게 달달한 건 속이 더부룩해…….
오웬
마시는 건 나야.
너는 그 빈 잔에 물이라도 넣어달라고 하든가?
피어싱을 한 손님
……!
너, 정말로 봉사할 생각이 없구나!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까지, 나쁜 기분은 안 들지만!
오즈
………….
강한 얼굴의 손님
저기……. 카운터 옆에 서 있는 점원은, 혹시 마왕 오즈 아닌가……?
빨간 머리의 손님
호위라고 했지만, 아마도 그렇겠지. 역시 샤일록, 발이 넓구만…….
오즈에게 접객을 받았다니, 앞으로 평생 자랑거리가 될 거야.
네가 말을 걸어 봐.
강한 얼굴의 손님
왜 내가!?
네가 먼저 가.
빨간 머리의 손님
아니, 너야말로…….
넓은 플로어는 계속 거의 만석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샤일록은 물론, 오웬의 퉁명스러운 태도도 손님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그렇지만…….
미틸
꿀이 쌓이는 속도가 느려졌네요.
오웬
뭐야 이 녀석들.
꺄악꺄악 소란을 피우는 주제에, 저것밖에 못해?
현자
음…… 손님들도 오웬의 접객하지 않는 접객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네요.
뭐든지 신선할 때가 가장 두근거리는 법이잖아요.
오웬
뭐야 그게. 어이, 너.
기분 좋은 척하는 거 아니야?
몸집이 큰 남자
그, 그런 건…… 읏.
현자
오웬, 안 돼요! 손님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면……!
오웬
내가 뭘 하러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꿀이 쌓이지 않으면 이 녀석들에게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
죽고 싶지 않다면, 두근두근 하라고.
현자
앗…….
오웬이 손님을 흔든 순간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도자기 티세트가 바닥에 흩어졌다.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라운지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오즈
……오웬, 손을 놔라.
오웬
싫어.
오즈
그렇다면 죽이겠다.
소파에 누워 있기만 하는 거라면, 죽어서라도 상관없겠지.
오웬
하하……. 무슨 소리야.
어깨를 들썩인 오웬이 오즈를 돌아보자, 싸늘하게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눈가를 스치는 것은, 눈의 결정.
오웬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나타난 눈보라가, 라운지에 번져간다.
9화
샤일록
오웬…….
손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샤일록이, 에이프런을 휘날리며 카운터 밖으로 나온다.
사쿠쨩도 이쪽으로 달려왔다.
살짝 땀이 밴 손으로, 미틸이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미틸
현자님, 이쪽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지켜드릴게요.
현자
미틸…….
오즈
……역시, 이 남자에게 접객 같은 건 무모한 일이었다.
샤일록, 골라라.
라운지의 손님을 살해당하게 할지, 내가 오웬을 죽여서 멈추게 할지.
샤일록
그것은…….
둘 다 별로, 아름답지는 않군요.
피어싱을 한 손님
그, 그래!
너희들, 정도가 좀 지나치잖아!
모자를 쓴 손님
오늘 이 라운지는 샤일록의 가게야.
날뛰고 물건을 부수는 짓은…….
오웬
<쿠아레・모리토>
샤일록
오웬!
샤일록의 목소리를 찢듯이, 테이블 위의 포크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소리를 지른 손님의 뺨을 스쳐 지나가 벽에 꽂힌다.
오웬
그렇게나 이 가게가 좋다면 여기를 네 무덤으로 만들어줄까?
너무 좋아하는 샤일록의 눈앞에서…….
응, 주인님?
차가운 시선을 받은 손님들은 덜덜 떨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공포마저 흥분으로 전환하는 서쪽의 마법사답게, 뺨을 붉게 물들이며.
모자를 쓴 손님
무, 무서워…….
피어싱을 한 손님
살해당한다……!
그때, 똑 소리가 나더니 마도구에서 꿀이 몇 방울 떨어졌다.
붉게 고인 수면에 녹아드는 것은, 농후한 와인 같은 씁쓸한 색.
현자
보라색 꿀……?
오너
무슨 일이지?
이런 색의 꿀은 본 적이 없는데!?
새파랗게 질려 있던 오너가 꿀의 일부를 숟가락으로 퍼 올렸다.
손등에 한 방울 떨어뜨리고 입을 가까이 댄다.
오너
이건……!
마, 맛있다! 너희도 먹어 봐!
현자
네!?
ㄴ, 네. 꿀꺽…….
미틸
……! 맛있어요!
오너
아아!
감칠맛과 깊은 맛, 그리고 쌉싸름한 맛이 어우러져 농후한 꿀의 맛을, 절묘하게 돋보이게 하고 있어.
그야말로 위험한 사랑의 맛, 같이…….
위험한 사랑의 맛.
그 말에 라운지의 손님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현자
(즉, 두근거리는 건 틀림없긴 해도, 현수교 효과 같은……!?)
오웬
………….
오웬이 불현듯 손을 내렸다. 그가 희롱하듯 라운지를 둘러보자 손님들이 움찔, 몸을 움츠린다.
똑, 똑, 하고 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감긴 머리의 손님
아, 아, 용서해 줘…….
오웬
대체 뭘.
너…… 내 트렁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보고 싶어?
감긴 머리의 손님
트렁크……?
오웬
그래. 내 개가 보관돼 있어.
지옥의 번견, 케르베로스가 말이지.
……자.
감긴 머리의 손님
힉! 지, 진짜다……!
오웬
아하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는, 꼴불견이네.
……읏, 후후.
가여운 부인에게 서비스해줄게.
감긴 머리의 손님
아, 커피…….
식었는데…….
오웬
내 커피를 못 마시겠다고?
감긴 머리의 손님
아, 아니! 그럴 리가!
감사합니다…….
주변 손님
뭐야, 이 기분은…….
공포와 고양과 혼란에 휘저어지는 느낌이 들어!
그의 악의와 살의는 진짜인걸.
그게 또, 참을 수 없어……!
보라색 꿀이 잇따라 병에 뚝뚝 떨어진다.
서서히, 장의 균형이 돌아오는 기색이 느껴졌다.
오웬
뭐야, 이게 더 간단하잖아.
진작에 이렇게 할걸.
샤일록
……오웬.
극상의 꿀을 얻기 위해서는 당신과 손님 모두가 필요합니다.
줄 거라면, 즐길 수 있는 범위의 공포만을.
과도한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모처럼 당신이 만들어 낸 농후하고 감미로운 꿀이, 쓰고 검고 탁해져 버릴 테지요.
부디, 조절에 신경써 주시기를.
오웬
흥…….
샤일록
할 수 있겠죠? 당신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고명한 마법사인걸요.
오웬
어떨까. 이 녀석들 하기 나름일 것 같은데.
오웬은 콧방귀를 뀌고 다시 소파에 걸터앉았다.
오웬
너희들. 더 두근두근 하라고.
흥분하고, 고양되는 거야. 내 꿀을 위해서.
현자
공갈!?
오웬
자, 오즈도 지팡이를 집어넣어.
나는 손님들이 기뻐하도록 서비스해주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아직 벌을 줄 셈이야?
오즈
………….
변덕스러운 남자로군.
샤일록
오즈, 감사합니다. 큰일로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게다가 드디어 오웬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현자
샤일록……. 혹시 이거, 의도된 거였나요?
샤일록
확실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혹시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나 흥분이라고 한마디로 말해도, 성질이 다르면 전혀 다른 맛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고요…….
칼날은 예리할수록 아름답지요. 위험과 매력은 언제나 이웃해 있으니까요.
샤일록의 시선 끝에서, 한 사람, 또 한 사람, 손님들이 오웬에게 다가간다.
일부러 사자의 꼬리를 밟듯이, 공포와 흥분에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다.
샤일록
혀로, 시선으로, 손발로, 마법으로…….
교묘하게 뻗어나오는 오웬의 매력은, 달콤한 독을 마신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질 테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씁쓸한 맛만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네요.
오웬의 접객으로 끓어오르는 객석을 곁눈질하며 샤일록은 다시 플로어로 향한다.
오즈도 지팡이를 든 채 제자리로 돌아오고, 미틸과 나에게도 주문이 몰려왔다.
숨을 되찾은 듯이, 다시 라운지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샤일록의 대접과, 오웬이 자아내는 수상하고 위험한 자극이 뒤섞여…….
사탕과 채찍이 엮어내는 듯한, 환성과 비명에 휩싸이며.
10화
샤일록
오늘 감사했습니다.
부디 조심히 들어가세요.
현자, 미틸
감사했습니다!
오즈
……무사히 끝났군.
현자
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영업은 성황리에 무사히 종료되었다.
병은 쌓인 꿀로 가득 차 있었다.
짙고 아름다운 붉은색과, 자극적인 보라색이 뒤섞여 넘칠 듯 채워져 있다.
오너
훌륭해……!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빛깔도, 향기로운 꿀도, 이제껏 없었던 엄청난 작품이다.
이것으로 만들어낼 리큐어는 틀림없이 최고의 걸작일 거야!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 줘서 고마워!
자랑스러운 얼굴로, 오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샤일록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오너
샤일록도, 고마워…….
예전에도 한 번 출점해 주었지만, 두 번째가 있을까 불안했거든.
흉내 내서 노는 것은 좋아해도, 가게를 영업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겠지?
사람도, 스스로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너니까.
샤일록
……확실히 평소에는, 치장하지 않고, 힘을 주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나도 서쪽의 마법사.
아름답고 세련된 욕망과, 가시 돋친 것을 좋아한답니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요.
그렇게 말하며 샤일록은 살짝 웃었다.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소파에 앉은 채 지루한 듯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는 오웬에게 말을 건다.
샤일록
오웬도 수고하셨습니다.
당신 덕분에 손님들께,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고양감을 맛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웬
그래……. 그래서?
특상의 꿀도 잔뜩 구했고, 손님들도 바보같이 기뻐했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멋진 활약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샤일록
……그렇죠.
물론, 말씀드린 대로.
다음 날. 샤일록의 바는 평소보다 더 북적였다.
클로에
기대돼~! 최고의 꿀에서 나온 리큐어로 만든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니!
라스티카
현자님과 미틸은 꿀 맛을 보셨다면서요?
무르
어땠어? 맛있었어? 구체적으로 어떤 맛이 났어?
현자
글쎄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틸
위험한 사랑의 맛?
리케
미틸은 사랑의 맛을 알고 있나요?
샤일록
후후. 리케도 마셔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모두가 저마다의 화제로 꽃을 피우는 가운데, 꽃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옅은 색의 유리에 그려진 보라색 꽃이 무척 섬세하고 아름답다.
현자
이 꽃병, 새로 들여오신 건가요? 세련되고 멋지네요.
샤일록
네, 그 모퉁이의 경치가 쓸쓸하게 느껴져서 적당히 골라 왔습니다.
……사실은 아주 조금, 정곡을 찔려서요.
현자
네?
북적이는 바 안에서, 샤일록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목소리를 낮춘다.
샤일록
오웬이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가게와 꽃병을 부숴서 제가 토라져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엉망이 되어 고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꽃병은 돌아오지 않아도 리큐르 정도는, 졸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린아이 같았네요.
샤일록이 희미하게 웃으며, 수줍은 듯 입가에 손을 댔다.
샤일록
하지만 뜻밖의 횡재라고나 할까요.
덕분에 저도 그와 마주할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도, 정면을 향해 마음을 고백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怪我の功名
오웬
뭘 속닥이고 있어?
현자
아…… 오웬.
바의 입구에 소리 없이 나타난 오웬이 모자의 챙을 살짝 올린다.
영업시간에 그가 찾아온 것은, 출입 금지령이 내려진 날 이후로 처음이다.
모두의 시선이 오웬에게 집중되는 가운데, 샤일록은 싱긋 미소 지었다.
샤일록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웬
그 리큐르, 도착했겠지.
누구보다 먼저 나한테 내놔.
샤일록
네.
이것만은 양보할 수밖에 없겠네요.
오웬은 오늘도 카운터석 끝자리에 걸터앉는다.
오웬
엄청 진하게 해줘, 주인님.
샤일록
어쩔 도리가 없는 도련님이시네요.
얌전히 기다려 주세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오가는 대화에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온도와 편안함이 있는 것 같다.
오랜 단골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도 바를 나서면 두 사람은 다시 남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시, 변덕스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가끔 나타나는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와, 얼굴이 익은 가게 주인이 나누는, 스쳐 지나가며 나누는 인사 같았으니까.